전자업계가 비메모리 사업확대를 비롯,"제2의 산업의 쌀"로 불리는 TFT-LCD
(초박막 액정표시장치)시장 참여를 놓고 연초부터 치열한 각축전에 돌입했다.
비메모리반도체분야에서는 최근 일본 도시바사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본격 기술개발에 착수한 삼성전자를 현대전자와 LG반도체(금성일렉트론)가
맹추격하는 양상으로 벌써부터 불붙고 있다.
TFT-LCD를 놓고는 삼성전자 현대전자 LG전자가 거의 동일한 "스타트-라인"
에 선채 발진을 위한 시동걸기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어느 분야건 누가
최종승자가 될지 아직은 장담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들 기업이 "탈 D램일변도체제"와 "첨단산업 정상 정복"의
신화를 걸고달려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차세대 캐시 카우(Cash Cow:수익이
급증하는 사업)비즈니스"로 업계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TFT-LCD사업.
LG전자가 지난해 일본 알프스전기와 TFT-LCD 생산공정을 개발을 위해
연구법인을 공동 설립한 것은 사업초기부터 경쟁사들의 기선을 제압
하겠다는 전략.
LCD분야는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생산기술의 확보 여부가 사업 성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원재료인 유리판넬에서 LCD가 한 개
생산될 수도 있고 열 개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알프스전기와 공동연구를 통해 우수한 양산기술을 확보하고
단숨에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맞서는 현대전자는 보다 공격적 이다.
지난해말 실무부서에서 작성한 TFT-LCD사업계획이 최고 경영자에 의해
퇴짜 맞은 것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양산시기를 늦춰가면서 까지 사업계획을 다시 짜는 이유는 경쟁사를
완전히 이길 수 있는 사업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것. 삼성전자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초 그룹차원에서 TFT-LCD분야를 삼성전관에 넘기기로 했으나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는 분야인 만큼 사업이 안정될
때 까지는 삼성전자가계속 맡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LG전자와 현대전자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선주력부대인
삼성전자의 힘이 아직 필요하다는 것이 실질적인 이유다.
이들의 자존심을 건 싸움은 비메모리반도체에서 더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에 관한한 삼성전자에 한 수씩 밀리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현대전자와 LG반도체는 올해를 대도약의 해로 잡고 비메모리사업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현대전자는 지난해말 미국 AT&T-GIS사 비메모리반도체부문을 3억4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국내 기업이 실시한 내-외 M&A(기업인수합병)로는 최대 규모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업계의 아킬레스건인 "비메모리분야
전무"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경쟁사들을 단숨에 제쳐버리겠다는 것이
인수의 목적이다.
이 회사는 AT&T-GIS사를 올해부터 본격 가동,반도체사업에서 차지하는
비메모리반도체분야의 비중을 25%로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고부가가치제품인 비메모리반도체 사업확대로 삼성전자나 LG반도체를
경쟁대열에서 떨어뜨리겠다는 전략이다.
LG반도체는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반도체 중흥에 발벗고
나섰다.
그룹 고위관계자는 올해 초 "LG반도체는 더이상 선두를 뒤쫓지만은
않을것이다.
올해부터는 반도체 업계 판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며 그 중심에는
LG반도체가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비장한각오는 올해 투자와 인력채용 계획에서 읽을 수 있다.
이 회사의 올해 반도체 분야 투자계획은 2조6백억원.반도체 3사중
가장 많다.
이중 비메모리분야에 투자되는 액수는 약 5천억원이다.
지난해 비메모리분야 투자액 7백억원보다 7배나늘어났다.
비메모리분야에 필요한 연구및 생산인력도 올해만 5백명을 채용할
방침이다.
1백명의 연구인력에게 프로젝트별로 연구과제를 부여,미국에 연수
시킨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이에 대항하는 삼성전자의 수성 카드는 전략적 제휴.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있는 메모리반도체 생산능력을 이용해 비메모리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일본 도시바사와 최근 맺은 제휴처럼 메모리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는 대신 최첨단 비메모리반도체기술을 이전 받아 고부가기치형으로
사업구조를 변경시킨다는 장기계획을 마련했다.
오는 2000년까지 세계 10대 비메모리업체로 성장하겠다는 것이 이
계획의 핵심이다.
이들의 선두 다툼은 때로는 감정 대립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지난 93년 삼성전자가 64메가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을 때 국책과제에
의한 3사 공동개발이냐 삼성전자의 단독 개발이냐를 놓고 설전을 벌인
것이 좋은 예다.
삼성전자의 2백56메가D램 발표시에도 현대전자는 "우리도 그 정도
제품이라면 한 달 이내에 내놓을 수 있다"고 평가절하해 버렸다.
이들의 자존심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싸움을 유치한 최고 다툼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반도체로대표되는 첨단산업이 국내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의 경쟁을 원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오른쪽이 구르면 왼쪽도 따라 도는 마차바퀴처럼이들의 경쟁은 상대방을
견인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 현대 LG의경쟁은 한국 첨단산업의 발전사다. 회사와 국가 경제가
모두 발전하는 선의의경쟁이라면 더욱 치열하게 맞붙어야 한다"는 김광호
삼성전자부회장의 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정상에 먼저 도달하기 위해 이들이 흘리는 처절한 땀을 자양분으로
한국첨단산업이라는 거대한 숲이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