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병원마다 값비싼 외국산의료기기일색이라는데 화가 나서..."

서울대병원 치료방사선과 박찬일교수는 대학병원이 개발한 의료기기로는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하게된 뇌질환치료기 개발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그린나이프"라는 명칭의 이 기기는 뇌혈관기형 뇌종양 간질치료에 쓰이는
뇌정위수술시스템으로 미국의료기업체인 멀티데이터사와 합작으로 생산,
전세계에 판매한다.

계약내용은 박교수팀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멀티데이터사가 하드웨어를
만들어 전세계시장에 판다는 것.

그 대가로 멀티데이터사는 첫해에 30만달러의 연구비를 서울대병원에
기탁하고 추후 판매량에 따라 매년 일정액의 연구비를 로열티대신 지불
하기로 했다.

뇌정위방사선수술에 쓰이는 뇌질환치료기시장은 현재 스웨덴 엘렉타사가
독점생산하는 감마나이프와 선형가속기형치료장치로 양분돼 있다.

감마나이프는 2백1개의 감마선을 병소에 일시에 쬐어 뇌질환을 치료하는
최첨단장치인데 시스템가격이 4백만달러(30억원)에 달해 수술비용이 5백만~
6백만원을 웃돈다.

이에 반해 일반방사선치료에 쓰는 선형가속기를 이용한 뇌정위수술시스템은
정확도는 감마나이프와 비슷하면서 이보다 싼 40만~60만달러정도이다.

미국과 독일의 2개업체만이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역시 일반 병원들이 갖추기엔 비싸 성능은 비슷하면서 값싼
뇌정위수술시스템을 국산화해 보자고 마음먹었다"고 박교수는 말한다.

마침 91년에 과제당 1억원씩 지원하는 서울대병원대형과제공모가 있었다.

경쟁률이 3~4대1에 달했지만 뇌정위수술시스템개발과제는 하이테크라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지원금을 따냈다.

박교수는 같은 과의 하성환 강위생 김일한교수와 개발팀구성에 나섰다.

이때 합류한 세명의 엔지니어가 방사선물리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연구및
실무경험을 쌓고 돌아온 경희대공대 서덕영교수, 가톨릭의대방사선과
서태석교수, 건국대의공학과 박승훈교수이다.

개발협력업체로는 녹십자의료공업의 방계회사인 성우정밀을 선정, 개발작업
에 착수했다.

컴퓨터프로그램을 만들고 업무분담을 하는 첫단계는 잘 풀려나갔다.

다음단계는 방사선조사에 쓰이는 직경 10mm에서 40mm에 달하는 콜리메이터
및 콜리메이터지지장치등 기구제작단계.

"콜리메이터소재로 방사선차단에 좋은 납을 쓰는데 드릴로 납에 구멍을
내다보면 열이 발생, 구멍이 일그러지곤해 정확한 크기가 잘 안나왔다"고
하교수는 회고한다.

다행히 성우정밀이 초정밀연삭부문에 축적된 노하우를 갖고 있어 이 문제는
해결됐다.

콜리메이터가 완성된후 개발팀은 팬텀(사람모양의 구조물)을 놓고 X레이및
CT(컴퓨터단층촬영)촬영후 모의수술을 해봤다.

수술결과 병소에 방사선량이 정확히 들어간다는 것이 확인됐다.

드디어 지난해 7월 폐암이 뇌로 전이된 53세의 남자환자에게 처음으로
임상시술을 했다.

한달후 환자의 CT를 찍었더니 병소크기가 거의 보이지않을 정도의 크기로
줄어있었다.

성공이었다.

"방사선물리학을 공부한 엔지니어의 합류등 팀워크가 좋았고 개발협력업체
를 적절히 선택했던 것이 성공요인이었다"고 박교수는 설명한다.

7월이후 지난해말까지 5건의 뇌동정맥기형수술과 전이성뇌종양 뇌종양재발
수술등 총 10건의 수출에 이 시스템을 적용했는데 모두 결과가 좋았다.

이 결과를 지난해 10월 국제뇌정위방사선수술학회에 발표했다.

이 시스템에 주목한 미국 멀티데이터사의 벅스만부사장이 한국에 와서
박교수팀이 개발한 시스템을 보고 공동생산의사를 표시, 계약에 이르게
됐다.

박교수는 최근 중국 동남아등에서 새로운 의료수요가 창출되고 있다며
이 시스템의 시장성을 낙관했다.

< 김정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