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증시를 맞는 새아침의 소감은 특별한것이다.

증시제도와 관행,증권정책이 모두 질적변화를 요청받고 있는데다
"세계화 증시"를 향한 패러다임의 전환도 더이상 미룰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조직 역시 재정경제원으로 새출발한터여서 신증권정책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크다.

증권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대개 두가지 지향점을 중심으로
재구축되어야할 것이다.

첫째,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않을 "주가관리라는 악습"의 폐기다.

증권시장은 자본주의 구조물중에서도 시장논리가 가장 철저히 관철되는
곳인만큼 애당초 정부개입의 여지는 없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거듭된 시장개입사례가 있어왔지만 결과는 언제나
"정부의 실패"로 끝나고말았다.

주가를 규제할수있다는 우스꽝스런 자만은 당국자들에게는 권위주의
시대로부터 내려온 일종의 유사권력이요 아편같은 것일수도 있었다.

그래서 첫단추를 잘못 끼웠을 때처럼 폭등때나 폭락때나 늘 정부가 직접
휘말려들었고 후유증은 국민경제 전체로 파급되어왔다.

주가규제를 포기해야하는 것은 당장 내년(96년)이면 개설될 주가지수
선물시장을 고려할때 더욱 절실한 과제다.

정부의 조작에 따라 주가가 출렁대는 소위 비체계적 위험이 상존한다면
선물시장의 이론적 기초는 깨끗이 와해된다.

이경우 정부의 실패는 곧바로 시장의 실패로 치환될 것이다.

주가관리와 관련해 투자신탁이 정부의 행동대로 기능하는 폐습이
없어져야함은 물론이다.

정부는 투자신탁을 장악함으로써 돈한푼 없이도 증시의 절대큰손으로
행세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관행은 투자신탁의 수익율구조를 왜곡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고객에 대한 투신사의 선량한 관리자의무를 포기케하는 것과 같다.

정부는 언젠가는 투자신탁 고객으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창피를 겪을
것이다.

신증권정책 제2의 명제는 공정거래와 투자자보호다.

정부는 늘 "투자자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회계와 공시,기업공개제도
등 거의 모든 증권제도를 공급자(기업)위주로 운용해왔다.

이젠 이 틀도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됐다.

발상전환의 요체는 증권시장의 소비자,즉 투자자 보호다.

지난해 우리나라 굴지의 모대기업은 미국증시 상장문제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무기연기하기로 결정한바있다.

이유는 뉴욕증시의 엄격한 기업공시제도-.

기업의 정보를 매분기별로 완벽하게 공개해야하는 소위"투명성조건"
앞에서 이익을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렸다하는 우리의 자칭"초일류기업"도
설땅은 없었던 셈이다.

상장기업과 대주주들에게 우리만한 천국은 없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현재의 회계및 공시제도를 그대로 둔다면 작전과 시세조종 그리 내부자
거래의 악습은 언제라도 반복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투자행위란 깜깜한 밤중을 헤매는 것과 다를바없다.

투자자들이 늘상 자금의 조달원으로서만 취급되어온 점도 간과할수없다.

지난해의 우선주 파동은 공급자 위주의 이같은 "정책 실패"를 웅변하고
있는 드러난 작은 사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자금의 조달에는 이에 상응하는 책임도 주어져야하는 법이다.

새해 아침에 던지는 이같은 과제들은 정부에 대해 가일층의 엄격한
시장관리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물론 시장관리의 강화는 규제완화와 관련된 시비를 부를수있고 기업과
투자자간에 이익상반의 문제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공정 경쟁을 위한 기본조건으로서의 "규칙"과 정부 권한의
무한연장을 위해 움켜쥐어왔던 권력으로서의 "규제"를 혼동해야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으로 언급되어야할 문제는 증권산업의 자율화다.

지난해 정부는 증권업무 자율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증권사 해외지점이
주소를 바꾸는데까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나라가 우리외엔 또
없을 것이다.

정부의 인재들이 주소지변경 허가 서류나 뒤적이고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다.

정부는 다행히 지난연말 혁명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대전환의 출발선상에
스스로를 다시 세웠다.

증권정책 담당부서 역시 슬림화됐다.

이제 조직의 변화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에 나설 때다.

지독히 나쁜 뜻으로 말한다면 시간이야말로 관료주의의 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있다.

우리의 당국자들이 또다시 시간만 죽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이것이 1백50만 투자자들이 정부에 거는 새아침의 바램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