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피로연"으로 우리에게 잘알려진 이안감독의 최신작 "음식남녀"의
원제는 "Eat Drink Man Woman"이다.

"먹는일 마시는일 남자 그리고 여자".얼핏보기에는 아리송한 제목이지만
이 네 단어가 이영화를 이해하는 실마리이다.

음.식.남.녀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그리 틀린 대답은
아닐 것이다.

이 네가지 핵세포들이 상존하는 유기체는 다름아닌 가족이다.

"결혼피로연"이 성을 매개로 동양의 가족관계를 되짚어봤다면 이
영화는 음식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탐구한다.

영화는 아버지와 세명의 딸이 이끌어간다.

아버지 주선생은 "살아있는 메뉴"로 불리는 특급요리사이다.

전직은 국빈상대로 유명한 대만 최대의 음식점 오성반점의 주방장.그러나
현재는 건강이 악화돼 세 딸에게 산해진미로 가득찬 저녁상을 차려주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다.

첫째딸 가진은 현진건의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B사감형의
여자다.

한때의 실연으로 세상에 담을 쌓고 살아가는 고등학교교사 가진의
책상에 어느날부터 연애편지가 쌓인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둘째딸 가천은 항공회사의 아이디어우먼이다.

독립심이 강한 그녀는 아버지와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킨다.

패스트푸트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막내딸 가령은 친구 애인을
슬쩍 가로채는 얌체형. 이 네사람이 변하는 과정이 영화의 주조를
이룬다.

동료교사에게 마침내 사랑을 고백하는 가진과 암스테르담지사행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가천의 변신이 각기 화려하고 훈훈하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딸의 친구에게 새장가를 드는 아버지의
변신은 극적이다.

대부분 "결혼피로연"으로 선보인 배역들의 과장없는 연기와 군더더기
없이 영화를 진행시키는 이감독의 솜씨가 깔끔하다.

허기진 배로는 관람이 불가능할 만큼 맛있는 음식이 많이 나온다.

94년 아태영화제 최우수작품상,최우수편집상 수상(29일 피카소 동숭아트
시네하우스 개봉 예정).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