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인도서부 수트라시에서 발생한 페스트가 인도전역과
중국 우크라이나등 전세계로 번지면서 국내에서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50년대말 이후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진 듯했던 페스트의 재발이
알려지면서 프랑스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소설 "페스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역사상 가장 지독한 전염병으로 불리는 페스트(흑사병)는 2세기에
처음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347-50년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전역,1664-66년 영국,1900-07년
미국에서 대량으로 발생했다.

1347년부터 1720년까지 유럽전역에서 수시로 창궐한 페스트때문에
사망한 사람은 유럽인구의 3분의1이 넘는 것으로(2천만명이상) 집계됐다.

카뮈가 47년 6월 발표한 소설 "페스트"는 페스트의 유행으로 다른
지역과 철저히 단절된 1940년대 알제리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한
작품. 까뮈는 여기에서 페스트를 이세계에 존재하는 악 그자체로
설정하고 이 악과 부조리에 맞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고 대항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소설은 오랑이라는 도시 곳곳에서 수많은 쥐들이 갑자기 죽어나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수백,수천에 이르는 쥐들의 시체가 도시 곳곳에 쌓이고 사람들은
당황하며 동요한다.

"페스트에 걸려 새들마저 모두 사라져 버린 아테네,말없는 고통으로
가득찬 중국의 도시들,썩은 물이 떨어지는 시체들을 구덩이속에
처넣고 있는 마르세이유의 죄수들,갈고리에 끌려나오는 환자들,그
처참한 페스트가 창궐하던 때 마스크를 쓴 의사들의 대혼란,밀라노
공동묘지에서 있었던 숨이 붙어있는 자들끼리의 성행위"(학원사간
"페스트.이방인"중에서) 오랑에 페스트환자가 나타나면서 주인공인
의사 리외가 머리속에 떠올린 과거 페스트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러나 겁에 질렸던 사람들은 곧 연대의식을 갖고 페스트의 박멸을
위한 투쟁에 나선다.

다른 지역이나 외부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원봉사대를 조직해서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도우면서 페스트라는
재앙에 대항하게 된것. 까뮈는 이 소설을 통해 허위로 가득찬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태도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것을 주장한다.

몇달째 기승을 부리던 페스트가 사라진 뒤 "그 재난속에서도 배울만한
교훈,즉 인간에게는 경멸당할 것들보다는 찬양받을 것이 훨씬 더
많다"라고 생각하는 리외의 입을 빌어 인류에게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페스트의 창궐과 그로인한 처참한 광경은 독일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와 사랑"에서도 나타난다.

방랑자이자 조각가인 골드문트는 페스트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보고있는 것은 모든 사람한테 절박한 것이다.

우리가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다하더라도"라고 말한다.

두 작가가 공포의 페스트를 묘사하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페스트로
형상화된 악을 쳐부수는 데는 사회조직원 나아가 인류 모두의 단결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간 페스트가 없었다고 해서 지금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페스트는 요즘 우리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극악무도한 범죄행각의
또다른 이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