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직후 독일의 거리모습은 지난 83년 7월 서울 여의도의 광경과
흡사했던 것같다.

우리네 여인들이 잃어버린 남편과 가족을 찾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당시
독일여성들은 "누가 000을 보았는지요"라고 씌여있는 큼직한 사인판을
목에 걸고 다녔다.

1982년 36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가 78년에 만든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바로 이같은
장면으로 시작된다.

남아도는 것은 여자와 면도용브러시뿐,그밖의 모든 것은 턱없이 부족한
45년 베를린. 마리아 브라운은 단지 하루반만을 같이 생활한 남편 헤르만
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나 죽었을지 모른다는 소식만 전해질 뿐이다.

하지만 헤르만의 생존을 굳게 믿는 마리아는 그와의 장차생활에 대비해
처절한 생존경쟁에 뛰어든다.

그녀가 우선 찾아간 곳은 미군전용클럽. 이곳에서 마리아에게 홀딱 반한
흑인 GI 빌과 관계를 갖던 중 남편은 돌아온다.

아무런 분노의 표정도 없이 담배만 피워대는 헤르만을 대신해 마리아가
빌을 죽인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헤르만이 자진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다.

남편을 위한 길은 성공밖에 없다고 결론내린 마리아는 섬유사업가
오스왈드에게 유혹의 손을 뻗친다.

몸을 이용해 다시한번 남자를 사로잡은 그녀는 오스왈드의 동업자가
된다.

마리아는 "경제 기적의 마타하리"라 자처하며 돈벌레가 되고, 그녀의
마음까지는 살 수 없었던 오스왈드는 모든 재산을 그녀와 헤르만에게
남긴채 세상을 떠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7분. 출옥한 헤르만과 마리아가 재회하는
시간인 이 7분동안 마리아의 집 거실에서는 독일과 헝가리가 맞붙은
54년도 월드컵 축구 결승전 방송이 흘러나온다.

들뜬 마음에 가스가 새는 줄도 모르고 담배불을 붙이던 마리아는 비극적
삶을 마감하고 바로 그때 아나운서는 독일의 승리를 감격적인 목소리로
전한다.

연이어 아데나워에서 헬뮤트 슈미트에 이르는 전후 독일지도자의 얼굴
들이 화면을 스쳐간다.

이 영화는 남성과 집단중심의 역사가 어떠한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조금은 허무적이고 염세적으로 그린 뉴저먼 시네마
의 일면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다. (코아아트홀개봉예정)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