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천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1995년도 예산안은 종반기에 접어든 김영삼정부의 대국민공약은 물론이고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포함한 국가경쟁력의 제고를 위한 집약적 대응노력을
포함하면서도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중장기적 과제를 수용해야 한다는
어려움 속에서 편성된 것이라고 볼수있다.

일반회계 기준으로 50조원을 약간 상회하는 1995년도 정부예산안은 올해
대비 경상증가율 12%수준에서 인건비와 방위비의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일반사업비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되는등 예산구조면에서는 올해와
별로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일반회계 부문에서 7천억원의 흑자재정을 시현, 이 재원으로
양곡증권 상환에 활용하고자 하는등 일반회계의 흑자기조 유지와 재정의
경기조정기능 강화라는 예산정책의 일대전환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예산당국은 세계경제 회복과 국내경기의 호조에 힘입어 증수되는 조세수입
의 일부를 채무상환에 충당함으로써 통합재정상의 적자규모를 줄이려는
차제에 재정의 경기조정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통화 금융정책 위주의
안정화 시책의 한계를 보완하는데 유리하다는데 흑자예산편성의 근거를
찾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흑자재원이 재정활동의 효율화를 통한 쇄신노력의 결과라면
몰라도 세입부문의 자연증수요인이나 지출수요를 인위적으로 억제한 결과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 정부가 기대하는 안정화 효과는 반감될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령 그러한 흑자재원이 정부활동의 효율화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며
경기의 과열이나 물가불안을 상쇄하는 측면이 존재하더라도 양곡증권상환에
흑자재원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경제활동의 애로요인으로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회간접자본의 미비를
개선할 공공재원이 부족해 민자유치를 적극 모색하는 마당에 천신만고 끝에
조성된 흑자재원을 양곡부문의 적자에 충당하는 것이 우선순위에 부합한가
라는 이의제기를 간과할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흑자예산의 편성과 그의 활용방법에 대한 최선의 선택에 대한
판단은 국회의 심의를 비롯한 정치과정에서 이루어질 것이나 그러한 과정
에서 정책판단의 우선순위에 대한 광범위한 공론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1995년도 예산안 편성의 기초가 되는 경제 재정지표(예 GNP경상증가율
12.9%, GNP 디플레이터 5%수준, 조세부담율 20.6%)등이 향후 전개될 경제
상황의 객관적 예측에 기초하였는지, 또한 일반회계 세출규모 증가율이
올해보다 낮아 확대재정의 측면은 찾아볼수 없다고 주장하나 특별회계예산,
공공기금, 그리고 지방부문으로의 기능이양등을 고려할때 공공부문의
경쟁력 복원이나 안정기조 유지에 솔선수범해야할 정부가 최선의 선택을
취한 것인가에 대한 격의없는 토론과정이 필요하다.

이번 예산편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개선은 그동안 성역시되었던 방위부문에
대한 예산심의가 율곡사업을 중심으로 예산당국의 편성영역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예산편성작업의 투명화 노력이 방위예산의 효율적 배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예산당국의 충분한 소명과 국회 언론의 검증이 긴요함은 두말한
나위 없다.

본격적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예산개혁의 주요대상이 되어야
할 분야는 중앙 지방정부간 재정관계부문(지방교부세 지방양여금 국고보조금
교육재정교부금등)이라고 할수있다.

그런데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자치단체의 경쟁과 효율을 도모할수 있는 이전
재정장치의 정책수단별 역할분담의 재편성과 개별정책수단의 개선을 위한
쇄신노력은 그렇게 괄목할만하다고 볼수없다.

새해 예산안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예산편성의 기조를 가시적인 성과가
기대될수 있는 하드웨어부문에 두고있는 결과 근원적인 성장잠재력배양에
또다른 터전이 되는 인력교육부문이나 공공부문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수
있는 공무원 사기진작방안, 그리고 남북통일에 대비 남북간 동질화에 앞서
우리사회의 사회경제적 동질성을 보강하는데 기여할수 있는 기초적 사회
복지 또는 균형발전의 경우 추가적지출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있음을
느낄수 있다.

특히 문민정부가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교육개혁을 뒷받침할 교육재정의
확충 노력이 내년도 예산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못한 아쉬움을 던져주고
있다.

한정된 재원규모내에서 단기적 현안 정책목표에 재원배분의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정부의 고유 역할이 중시되어야 하는 이러한
분야에서의 재정역할이 보강되어야 사회적 형평성 확보와 국민통합을 통한
국가경쟁력의 기반확대가 도모될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외견적인 부문별 규모의 상향 또는 하향조정에 그치지 않고 정부기능의
재정립에 입각한 불요불급한 경비의 과감한 축소와 사업별 우선순위의
재설정등 정부부문의 전반적인 쇄신노력에 기초하여 새해 예산이 편성
됐는지에 대한 국민적검증이 국회를 비롯한 정치과정을 통하여 면밀히 전개
되어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