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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경제관료] (37) 제4편 빛과 그늘 (2)..차관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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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5월 재무부 간부회의 석상에서 홍재형장관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지금 이 시간이후 차관보들의 결재권을 거둬들입니다. 차관보는 앞으로
    장관정책보좌라는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의에 참석했던 차관보들은 너나 할 것없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이날의 장관 지시는 모든 서류에 "차관보 결재란"을 없애고 대신 차관보
    들의 "개인의견"을 첨부해 "참고사인"만 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상명하복"을 규율로 삼고있는 곳이 관료사회다. 이곳에서 결재권이
    없어진다는 건 유명무실한 자리로 전락하는거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우리사회는 "결재권의 범위=끗발의 잣대"라는 항등식이 성립하는 곳
    아닌가.

    이런 잣대로 본다면 홍장관의 지시는 차관보라는 직책이 있으나마나한
    존재라는 것과 통한다. 물론 홍장관의 지시는 차관보들의 "끗발"을
    없애겠다는 의도보다는 "정책보좌에 충실하라"는 쪽에 본 뜻이
    있었겠지만.

    사실 장.차관이 일상업무에 이리쫓기고 저리쫓겨야 하는 상황에서
    차관보들이라도 "차분하게" 중.장기 정책구상을 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장관의 정책방향을 잡아주는 "롤"을 할 수도 있다.

    재무부만 해도 금융.외환시장개혁등 거시적인 정책보완이 시급한 형편
    이다. 게다가 차관보들의 결재권행사는 결재의 "수순"만 하나 더 늘려
    놓은 셈이어서 정책의 신속.효율에 걸림돌만 된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홍장관은 바로 이런 정책일탈을 "제 궤도"에 진입시켜놓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홍장관의 이 지시는 한달도 못갔다.

    형식상의 결재권이야 없어졌지만 소관부서의 국.과장들로부터 일상업무에
    대해 "참고 결재"를 하는게 슬그머니 부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관보들이 먼저 참고결재를 요구했던 것도 아니다. "버젓이
    "위에" 차관보가 버티고있는데 국.과장들이 그 존재를 "내 몰라라"하고
    건너뛰기가 어려웠기 때문"(L국장)이었다고 한다.

    좀더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의 현실에서 차관보라는 자리는 장.차관으로
    승진하기 전단계에 있다. 언제 장.차관이 될 지모르는 사람을 따돌리다가
    나중에 무슨 화를 당하려고"(C국장)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장관은 "결재권 박탈"을 선언하고 국.과장들은 "알아서" 기고. 차관보란
    직제는 이처럼 "어정쩡한 자리"다.

    직급상 1급이면서도 직책상 동급인 기획관리실장 예산실장등 "무슨무슨
    실장"들과 달리 장관-차관-국장-과장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라인"에서
    비켜나 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정부조직법상에도 차관보란 직제는 분명한 "스태프"로 돼있다. 바꿔말해
    장관의 순수한 참모로 자리매김돼 있다.

    그러니까 쉴 새없이 바쁜 장.차관을 대신해 중장기적인 정책비전을
    구상하고, 이를 장관의 시책에 반영토록 보좌하는게 그들의 "본연"이란
    얘기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컨설턴트인 스티븐 코비박사의 말을 빌리면 "중요
    하고도 급한 일"은 장.차관이, "중요하건 않건 급한 일"이 실무관료들의
    몫이라면 스태프인 차관보들은 "중요하지만 급하지는 않은 일"을 여유와
    안목을 갖고 챙겨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들에게도 일정한 "활동반경"은 주어져있다. 2명의 차관보를 두고
    있는 재무부의 경우 제1차관보는 재무정책.금융.증권보험, 제2차관보는
    국제금융.경제협력.관세 행정을 총괄하는 것으로 돼있다.

    경제부처중에서 유일하게 3명의 차관보를 두고있는 상공자원부는 1차관보
    는 통상및 무역, 2차관보는 공업및 산업기술, 3차관보는 자원.에너지관련
    분야를 각각 분장하고 있다.

    관련된 국들의 국.과장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이들을 지휘하게
    돼있다. 명목상 결재권은 주지않더라도 지휘책임은 부여하는, 대단히
    "2중적인" 자리가 차관보란 직책이다.

    어찌보면 우리 관료조직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형식논리와 비효율을
    단적으로 엿볼 수도 있다.

    신분상으로도 차관보들은 장.차관과 같은 정무직도, 그렇다고 국.과장등
    실무공무원과 같은 일반직도 아닌 별정직이다.

    하기에 따라선 영문의 "assistant minister"란 말그대로 "소관분야의
    미니장관"(박운서상공자원부 차관)으로서 정책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고,
    일개 국장정도의 실무적인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차관보직책은 장.차관으로 올라가는 "도약대"가 되느냐, 아니면
    관료의 옷을 벗는 종착역으로 끝나느냐의 분수령이 되기도 한다.

    정재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산하 1급들에게 "당신들은 내가 "상품"
    으로 내놓은 사람들이다.

    어떻게 역할을 해내느냐에 따라 다른 부처의 차관으로 스카웃될 수도
    있고, 그만 옷을 벗고 관료생활을 정리하느냐가 갈라질 것이다"고 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차관보들의 "위상"을 개개인 당사자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

    미국처럼 정무직으로 자리매김을 해서 "실권"을 주거나, 아니면 일본
    처럼 아예 차관보란 직제를 없애거나 양단택일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 경제부처의 "정책코스트"를 줄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정리=이학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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