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들의 쓴웃음을 자아냈다. 경제비서실에 입문한 3명의 관료들이 모두
부산출신이어서다. 이철수거시경제담당은 부산고13회. 박재윤경제수석의
한해 후배다.
김정국재무담당은 부산중을 나와 부산고에 입학(중도에 선린상고로 전학)
했던 범PK. 산업통상쪽의 추준석씨는 경남중.고출신.
"적임자"를 고르다보면 그렇게될 수도 있다. 청와대측 설명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들은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자원부등 소속부처에서 해당분야 경력을
두루 쌓았다.
그런 경력이"금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첨화"는 지연.학연이
아니었겠냐는 촌평을 부른 것이다.
"출세하려면 시운이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의 경제관료들은 특히
이 말을 즐겨 쓴다. 누가 장관이 되고 실세가 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해서다.
예컨대 지난5월초 환경처의 인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요직중의 요직으로
꼽히는 두 핵심정책과장 자리에 장관의 대학교수시절 제자들이 전격 발탁된
것.
이들의 나이는 30대. "파격 인사"라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이들은 환경처
에선 꼽히는 엘리트급 학력과 실력의 소유자란 얘기를 들어왔다.
날로 중요해지는 환경처의 위상재정립을 위해 수긍할 수있는 인사였다는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긴 장관의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연고인사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자리가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비서관이 그렇고 공보관 총무과장 행정관리담당관등 광의의
비서직으로 불리는 보직들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해 모경제부처장관이 취임직후 단행한 인사도 이런 맥락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공보관(국장급)과 비서관(과장급)을 출신고등학교 후배로 보임했던 것.
이런 식의 연고인사는 장관의 취임초기에 특히 두드러진다.
빠른 기간내에 부처를 장악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의중을 정확하게 업무에
반영할 수있는 사람들로 "직할부대"를 짜는 셈이다.
반대로 장관이 물러날 때쯤 해서 단행하는 "봐주기식"인사는 구설수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장관이 "평균수명"으로 불리는 1년이 넘어서 중요포스트에 "계열"인사를
앉히는 경우다.
그런 인사가 이뤄지면 "저 자리는 6개월아니면 1년짜리다"는 말이 반드시
나돈다.
92년말 모경제부처에서 있었던 총무과장 인사가 단적인 예다. 장관이
퇴임직전 자신과 "비서"의 연을 맺었던 주니어급 서기관을 총무과장에
임명했던 것.
총무과장은 서기관급 보직중에선 으레 최고참급이 보임된다. 국장승진직전
거쳐가는 자리처럼 돼있다.
그러나 이 "신임 총무과장"은 새 정부들어 장관이 바뀌면서 예전자리로
되돌아가는 "보직강등"을 당하고 만다.
핵심보직이 "장관따라 시운따라" 보임되는 것만도 아니다. 몇몇 부처는
아예 특정지역이나 학교출신끼리 대물림하며 독차지하기도 한다.
"잠시 거쳐가는" 장관이 자신의 뜻대로 인사하기에 애를 먹는다. 배타적
진입장벽이 있다는 말이다.
지난 92년 경제기획원의 핵심포스트인 기획국장 자리를 놓고빚어졌던
해프닝이 전형적인 예다.
당시 최각규부총리는 이 자리에 L국장을 전보 발령키로 하고 내정까지
해둔 상태에서 취소하고 말았다.
L국장이 다른 부처에서 잠시 외도한 경력이 약점으로 작용한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특정지역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돌았다.
사실 경제기획원은 90년초 차관-차관보-기획국장-종합기획과장으로
이어지는 핵심포스트를 특정지역출신이 차지하는등 상대적으로 지역연고가
강한 부처로 알려져 있다.
도대체 이처럼 우리관료사회에 연고주의가 강하게 작용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우선 한국관료사회가 유교적 가족주의에 젖어있는 것이 근인
이라고 진단한다.
관료들 스스로도 연고주의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얼마전 현대
경제사회연구소가 1천9백25명의 경제관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선 응답자의 83.2%가 출세의 조건으로 "연줄과 배경"을 꼽기도 했다.
이런 연고주의가 관료들의 사기에 나쁜 영향으로 귀결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없다.
한국의 관료집단이 미국처럼 엽관제도(Spoil System)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실세따라 이리저리 중요포스트가 움직여지는건 곤란하단 얘기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바뀌면 장.차관은 물론 국장급이상 5천여개의 자리가
한꺼번에 이동한다.
어제까지 사무관급으로 있던 사람이 국장이나 차관보로 2,3단계를 한꺼번에
건너뛰어 오르는 일이 다반사로 돼있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게 제도화돼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 그 자리를 깨끗이
물러난다. 후유증이 있을리가 없다.
"어느 집단이고 진입장벽이 높으면 조직에 물이 고이고 정체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가장 낙후된 집단중의 하나가 관료사회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고시라는 1차 진입장벽말고도 출신지역 출신학교등 벽이 겹겹이
쌓여있어 조직은 탄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안병영연세대교수).
중첩된 진입장벽은 경제관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결국은 행정효율성
저하로 이어져 그 비용이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