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발생이나 법정관리신청 가능성이 큰 상장사를 미리 알아냄으로써
투자위험을 줄일 방법이 없을까. 지난 15일 피혁업체인 호승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을 비롯 올들어서만 7개 기업이 부도를 냈거나 법정관리를 신청
했다. 지난 한해동안의 8개상장사에 비해 숫자가 크게 늘어난 셈이다.
피해를 입은 소액투자자도 호승의 3천1백29명등 2만5천6백여명에 이른다.

한국신용평가는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신평비즈니스"최근호에서 도산직전
기업의 특성과 재무상태를 몇가지로 분류했다.

우리나라의 도산기업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고속성장을
추진하다 쓰러지는 경우이다. 이 유형의 부실기업들은 도산직전에도 매출액
증가율등 성장성지표가 여타 부실기업은 물론 정상기업보다도 두드러지게
높은 반면 매출액순이익률이나 총자본경상이익률은 상당히 낮다. 또 성장
일변도로 인한 외부자금의존이 높아져 부채비율이나 금융비율부담율은
급상승세를 보인다.

둘째로 많은 부실기업 유형은 수익성은 비교적 양호하나 매출액감소등
성장성이 부진한 경우이다. 이는 경영진이 시장수요의 변화, 경쟁사출현,
신제품출시등 변수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셋째, 흑자도산의 경우이다. 이들 기업은 당좌비율이나 유동비율등 유동성
지표가 불량하다. 그러나 자금사정이 급작히 나빠질 것을 투자자들이 예측
하기란 쉽지 않다.

투자가 왕성하다가 갑자기 무너지는 기업도 종종 있다. 이런 기업들은
도산을 앞두고 총자산증가율이 급격한 높아진다. 수익성이나 현금흐름은
매우 저조하다. 총자산증가율이 높은 까닭은 기업부실을 회피하기 위해
무리한 신규차입이나 신규투자를 감행한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재기의
몸부림이 실패했을 때는 부실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실기업들의 장기적인 재무상태변화를 살펴보면 부실화의 조짐을 더욱
뚜렷이 알 수 있다. 도산 5년전을 보자. 부실화의 징후는 수익성지표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 총자본경상익률이나 매출액영업이익률같은 수익성지표
가 서서히 저하되기 시작한다. 도산 4년전, 수익성이 부진하다보니 돈 쓸
곳은 많고 내부유보는 쌓이지 않아 배당여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무리하게 배당을 실시하면 당장 단기차입금증가로 유동부채비율쪽이 오름세
를 보인다. 도산 3년전부터는 성장성이 약화되고 지급능력의 부족으로
종업원의 사기가 저하된다.

쓰러지기 2년전에는 과거에 악화됐던 재무비율들이 뚜렷한 부실의 징후를
보인다. 도산 1년전엔 수익성과 자본구조가 건전기업과 현저하게 차이가
나면서 거의 모든 재무지표들이 악화되고 현금화할수 있는 유동자산의
격감으로 사실상 지급불능 사태를 맞게 된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매출액이나 순이익이 모두 양호하다가
느닷없이 도산하는 이른바 흑자도산의 경우이다. 경영의 내막을 잘 모르는
투자자들은 대개 매출액과 손이익규모만을 믿고 투자하기 때문에 자연히
피해를 입는 투자자가 많게 마련이다.

기업의 "순현금흐름"추이를 잘 살펴보면 이같은 피해를 사전에 어느정도
막을 수 있다. 증권당국은 94회계년도부터 그간 작성해온 재무상태변동표
대신 현금흐름표를 만들도록 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앞으로 각 기업의
순현금흐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순현금흐름이란 기업이 영업활동을 하면서 외부로부터 벌어들인 현금을
뜻하며 "현금주의 당기순이익"이라고도 부른다. 순현금흐름은 당기순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더한 값(기존의 현금흐름)에서 매출채권, 재고자산, 투자자산
평가손익, 선급비용, 외상매입금의 증감을 가감해 산출한다. 따라서 매출
채권이나 재고자산에 묶여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을 식별하는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동아증권이 지난 90년이후 부도를 낸 35개사를 분석한 결과 절반이상인
18개사가 순이익이 흑자를 내고 있으면서 부도가 났는데 35개사중 32개사가
부도직전년도에 순현금흐름기준으로는 적자를 보였다. 더욱이 31개사가
부도전 5개년도 가운데 3개년도에 걸쳐 순현금흐름상 적자를 낸 것으로
조사돼 현금흐름을 이용하면 부도가능성이 큰 기업을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올 1월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곧바로 부도가 났던 한국강관을
보면 부도전 5년동안 당기순이익은 규모만 줄어들 뿐 계속 흑자였다.
매출액은 오히려 증가세였다. 반면 순현금흐름(현금주의 순이익)은 지난
5년동안 3개년도에 걸쳐 큰 폭의 적자를 나타냈다. 나머지 기업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순현금흐름은 이처럼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의 이면에 감춰진 기업
의 현금수요 대처 능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에 적지 않은 판단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순현금흐름은 기업의
영업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동아증권 조사부의 윤성원과장(공인회계사)은 기업이 급격한 외형성장정책
을 추구하면 재고와 매출채권(운전자금)의 증가로 순현금흐름은 크게 줄어
들고 내실경영을 하게 되면 운전자금 부담의 감소로 순현금흐름은 양호해
진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 해의 순현금흐름만으로 그 기업의 자금사정을
판단해선 안되며 3-5년동안에 걸쳐 장기적인 추세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