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극작가 2명의 연극이 국내무대에 처음 올려지게
화제.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현대유럽연극계를 풍미한 토마스 베른하르트
(1931-89)와 타데우스 칸토르(1915-93)의 작품이 소개되는 것.

극단 세미(대표 최성웅)는 오스트리아가 낳은 독어권의 대표적인 희곡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연극쟁이"를 4월27일~5월10일 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연출가 이윤택씨가 이끄는 우리극연구소는 폴란드 실험연극의 기수
칸토르의 "죽음의 교실"을 재구성한 "허재비놀이"를 5월5~29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이들 두 작품은 모두 한국초연인데다 작품성도 뛰어나 코믹연극류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극단 세미가 준비중인 "연극쟁이"의 작가 베른하르트는 특유의 풍자와
독설로 독일어권과 불어권의 젊은 작가들에게 "문체의 스승"으로 여겨지고
있는 인물.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근교 헤를렌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성장한 그는 헛된 욕망으로 날을 지새우는 인간 군상의 허식을 조롱하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죽기직전 유언을 통해 70년간 자신의모든 작품을 국내에서 출판.공연하는
것을 금지시킨 기인이기도 하다.

이번에 첫선을 보이는 "연극쟁이"(84년)는 자부심에 가득찬 시골연극인의
허망한 연출일정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 형편없는 시골사람들의 관람수준을
걱정하면서 희대의 연극을 엮어내려 했던 주인공이 정작 막을 올리는 날
동네에 큰 불이 나 관객을 모두빼앗기는 불운을 겪게된다는 내용.

베른하르트 연구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장은수씨가 번역을 맡고
독일 본시립극단 객원조연출가로 활동하다 귀국한 임수택씨가 연출을 맡아
국내무대에 데뷔한다.

우리극연구소의 "허재비놀이"는 지난해 타계한 폴란드의 전위작가 칸토르의
"죽음의 교실"에서 연극방법론을 빌어 온 것이다. 1915년 폴란드 동부의
작은마을 빌로폴에서 태어난 칸토르는 20시기 연극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손꼽히는 인물.

그의 작품 바탕에는 전체주의가 지배했던 과거 폴란드의 암울한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어떻게 하면 "무대=교실"이라는 조그만 공간속에 거대한
현실을 극명하게 담아낼까 하는 것이 칸토르의 평생 과제였다.

"죽음의 교실"은 이러한 칸토르의 연극철학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문제작이다. 배우들을 꼭두화시켜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짓누르는
역사의 군화발아래서 신음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강력하게 이미지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허재비놀이"는 이같은 칸토르의 "죽음의 교실"이 갖고 있는 틀 속에
어두웠던 우리의 지난날을 엮어내려는 작업이다. "죽음의 교실"에서와
마찬가지로 꼭두화된 배우들을 등장시켜 격동의 한국현대사(4.19-현재)
속에서 의식없이 살아간 "허수아비=지식인"들의 굴절상을 그려내려 한다.

우리극 연구소의 "해외극의 수용"시리즈 첫번째 작품인 이번 무대에는
이 극단이 공개모집한 연기자재훈련과정 참가생들이 대거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