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씨(58)가 오랜 문학적
침묵을 깨고 새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73년 식민지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태풍"이후 20여년만에
내놓는 신작이라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간 작품 집필중이라는
소식만 알려졌을 뿐 제목,내용,출판사 모두 베일에 쌓여있던 화제의
작품은 민음사에서 내주 상재되는 "화두".

1천여페이지를 1,2부에 나눈 역작이다. 92년 겨울 펜을 들기 시작해서 1년
반만에 탈고했다. 이를 위해 지난 한해 재직하고 있는 서울예술전문대를
휴직하고 은평구 갈현동 자택 서재에서 작업에만 전념해 왔다고 한다.

"화두"는 그의 대표작 "광장"의 숙제인 이데올로기문제를 다시한번 "화두"
로 던지고있다. 그것은 철학도 이명준으로 하여금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쉬는"바다에 몸을 던지게
했던난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작품의 접근방식은 "광장"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60년에는
권력과 현실의 차원에서 "밀실로부터 광장으로"를 갈구 했다면 오늘에는
지식의 범주로서 다가서려 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문제는 지식의 단계에서는 아직 우리에게 시작도 되지
않았다. 마르크스전집을 제대로 다 읽고 진정으로 고민해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오히려 지식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지금부터이다"
라고 최씨는 말한다.

최씨는 이같은 주제를 자신의 개인사를 쓰는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소설은 작가가 월남하기전 원산의 한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초기 프로문학의
대표작인 포석조명희의 "낙동강"을 배우던 일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이어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시골읍에서 목재상을 하는 아버지의 서가에서
백남운이 쓴"조선경제사",코헨의"정신현상학",외국소설"젠다성의 포로"등을
읽으며 출발한 그의 사상편력이 작품 전반에 펼쳐진다.

여기에 해방에서 광주까지 한국사 격동의 순간과 독일통일, 동구권의 몰락
등 세계사의 대격변이 준 지적고뇌를 "양 어깨에 20세기 과제와 고통을
짊어진 중량감"을 느끼며 토로하고 있다.

독자에게 붙이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인류라는 커다란 공룡에 꼬리 한
토막을 차지하고 있는 민족,거기에 비늘로 붙어있는 개인이 몸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내는 신음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최씨의 새 작품은 "광장"이후 그의 머리를 잠시도 쉬지 않게 했던 현실
이라는 공안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제시하려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 한동안의 절필이후에도 예전이상의 필력을 보여줌으로써 조로현상이
일고있는 우리 문단에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작가의 보람"을 느꼈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보람을 얻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