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캐나다 공연 때 였지요. 경기민요을 부르고 나서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고국에서 받지 못한 대접이었지요. 요즘엔 인기도 없고 너무
쉬워 보여서 그런지 민요를 배우려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기민요 제2세대의 선두주자인 명창 이춘희씨(47.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후보)는 국악중에서도 "비인기 장르"인 경기민요가 국악의
해를 맞아 제도적으로 장려되고 인기도 끌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지금 경기민요를 포함한 민요들은 각종 공연에서 판소리 등의 막간에
들어가는 양념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후추가루 수준이지요" 특히 해외공연
을 갈 때 민요팀은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빠지는 경우가 잦은데 외국유명
합창단의 주요 레퍼토리가 대부분 자국 민요라는 사실과 너무 대조적이란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안복식(안비취) 이왕관옥(묵계월) 이윤란(이은주)선생 등 경기민요 1세대
의 뒤를 이어 전승.보급에 주력하고 있는 이씨는 그 목소리가 진중해 자칫
경박해지기 쉬운 경기민요가풍에 묵직함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기
가 넘치는 무대매너로 경기민요의 맛을 살리는 포용력을 갖춘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래가락" "청춘가" "사발가" "양산도" "자진방아타령" "서울
긴아리랑"등 수십곡의 경기민요 중에서 이씨는 특히 애조띈 곡을 잘 부른다.

그가 가장 즐겨부르는 민요는 "이별가"다.

"이별이야 이별이야 임과 날과 이별이야. 인제가면 언제오리요 오만 한을
일러주오(중략). 멋모르고 헤어진 뒤 이다지도 그리운가. 살아생전 생이별
은 생초목의 불이라네" 맑고 고운 목소리에 묻어나는 절제된 한의 정서가
경기민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민요는 누구나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잘 부르기는
어렵지요. 목구멍의 모든 부분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섬세한 기교가 필요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판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씨는
노랫소리는 무엇보다도 우선 "맑고 고와야 한다"고 말한다. 탁음이 많고
두성을 자주 쓰는 판소리는 여성적인 소리는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
이다. 지금도 일년에 몇차례 산을 찾는다. 산에 가면 세끼 식사시간만 빼고
는 종일 소리연습이다.

"열서너살 무렵부터 특히 노래를 좋아했어요. 라디오에서 "도라지" "창부
타령"등 민요가 흘러나오면 귀신이 부르는 듯한 여운에 병이 날 정도로
좋았지요" 17살 나이에 이씨가 찾은 곳은 가요학원이었다. 판소리나 민요는
특수한 사람만 따로 할수 있는 것인줄 알았었다. 가수가 되려는 딸의 꿈을
눈치챈 어머니는 "미쳤다"며 이씨를 끌고 이병원 저병원을 다녔다. 한의사
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치료"라고 처방해 이씨는 가요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스무살 때 인연이 닿은 곳이 단성사 근처의
"청구고전성악원"이었다. 거기서 이창배 정득만선생에게서 "선소리산타령"
"12좌창"을 배웠다.

3년 뒤에는 안비취선생 문하에 들어가 경기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12좌창"을 포함한 서도민요 경기민요를 익혀나갔다.

이씨는 지난해 11월17일 잠을 자다 오른쪽 반신마비가 돼 누워있는 선생의
건강이 제일 걱정된다고 말한다. 이씨는 지난해 민요소리꾼 최초로 독창회
를 가졌다. 이씨는 87년 "12잡가"발표회를 갖기도 했고 92년엔 교육용으로
악보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올해는 우선 경기 중부권을 중심으로 순회공연을 가질 계획이다. 90년에
결성한 "경기민요동호회"의 두번째 공연도 6월16일 국립극장에서 갖는다.

그동안 이창배선생이 "추석달" "물레방아" "개고리타령"등 몇곡을 신곡
민요로 작곡한 것을 빼고는 새로운 대중민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더욱
쉬운 민요를 작곡해 보급하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다. 경기민요도 대중화를
위해 창극형식으로 선보일 계획도 갖고 있다.

"국악의해를 맞아 국악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경기민요를 포함한
민요가 재조명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히는 그는 중앙대와 서울예전에만
전공이 개설돼있는 현실에서 전승과 보급은 차츰 어려워만 질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올해는 민요창극단도 반드시 창단됐으면 한다고.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는 딸 정화는 오는3월 서울국악예고에 정가전공으로
입학한다.

<권녕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