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가 처음으로 편성한 43조2천5백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의
법정처리 기한이 2일로 닥쳐왔다. 새해 예산안이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도 받지 못한채 날치기 통과되거나 시한을 넘길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예산회계법에 따르면 행정부는 회계연도 개시 90일전에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고 국회는 회기개시 30일전까지 예산안을 심의해
통과시키도록 규정돼 있다. 물론 과거에도 예산안이 법정처리 기한내에
통과되지 못한 적은 있다. 법정처리 기한을 넘기다 못해 회기개시 직전
에야 통과된 때도 있었다.

주로 예산과는 관련이 없는 정치적인 사안에 새해 예산안이 발목을
잡힌 탓이었다. 70년대 이후 법정시한을 넘긴 것은 여소야대 국회였던
90년과 91년 예산안의 경우였다. 이때 법정 시한을 넘기고 12월중순
에서야 국회에서 통과됐다. 당시 예산배정이 다음해 1월10일께에야
이루어져 계속사업이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새해 예산안을 회기 개시 30일 전까지 통과시키도록 한것은 예산당국이
각 부처별 사업별로 예산을 배정하는 작업을 할수 있도록 하자는 배려
에서 였다. 국회가 예산을 통과시키고 난뒤에도 정부가 예산을 공고
하고 집행계획을 수립하는데 최소한 30일 이상의 시일이 걸린다는게
예산당국의 설명이다.

또 해외공관이나 일부 도서 벽지의 경우 적어도 회기 개시 10일이전에
예산을 배정해야 봉급이나 경비를 연초부터 차질없이 지급할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과거와는 달리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지방의회가 자체
예산을 심의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게 정부의 지적이다. 지방교부금을
받아 새해 예산을 짜야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중앙정부
예산이 확정되지 않으면 예산편성을 미룰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결국
국회에서 예산안 통과가 늦어지는 만큼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사업도
지연될 수 밖에 없다.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해도 정부는 돈을 써야한다. 공무원
봉급을 지급한다든지 출장비를 지출하는 일을 미룰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이때에는 부득이 바로 전년의 예산내에서 지출하게 되며
이를위해 임시로 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예컨대 내년 예산에서 공무원 봉급이 3% 인상되도록 예산안에 반영
되어 있더라도 일단 인상분은 빼놓고 올해와 같은 수준 만큼만 지급
되는 것이다.

출장비나 기타 경상경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직 준예산을 편성한 사례가 없는데다 구체적인 절차에 관한
규정이 없어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은 중단될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산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기능이 일시적으로 중단될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신규사업이다. 도로 항만 공항등 새로 개시하는 사업은
어차피 착공이 늦어지기 십상이다. 국회의 예산심의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되는 경우도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회가 일정에 쫓기다보니 예산심의 자체가 부실하게 이루어
질수 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할수 있다. 사실 내년 예산의 경우
안기부법 개정문제등 정치현안이 예결위에서 계속 거론되는 바람에
예산심의가 제대로 진행되지못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
이다.

이렇게 보면 2일 국회에서 전격 통과되든 아니면 시한을 넘기든지
간에 내년 예산은 국회의 충분한 심의를 거치지 못한 "절름발이
예산"이 될 공산이 크다.

<박영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