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여행사 직원들이 해외 단체여행객들의 여권을 이용해 거액의 외화를
바꿔 국외로 빼돌리는 신종 외화 밀반출 수법이 성행하고 있다.
이런 외화 밀반출은 가명계좌를 통한 외화 반출(일명 환치기) 등 기존
의 수법이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어렵게 되면서 나타나고 있다.
7일 경찰청과 여행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일부 여행사 직원들이
인솔 여행객들의 여권을 이용해 1인당 여행경비 한도액인 5천달러씩을 모
두 바꾼 뒤 이를 해외로 빼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환전한 외화를 여행객들에게 나눠줘 출국 절차를 밟은 뒤 다시
거둬들이거나 "여행객들의 분실 위험 때문에 대신 갖고 나간다"고 세관
당국을 속여 공항을 빠져 나간다.
이들 여행사 직원에게 외화 밀반출을 의뢰하는 쪽은 주로 외국 연예인
초청 공연 등을 기획하는 이벤트사나 외국영화 수입업자 등인 것으로 알
려졌다. 이들은 외국인 초청 공연료 등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25~30%)을
피하기 위해 당국에는 공연 계약금을 훨씬 줄여서 신고하고 나머지는 여
행사 직원을 이용해 빼돌린 외화로 해외에서 지급한다는 것이다.
해외 유명 성악가와 연주자 등의 국내 공연을 유치한 적이 있는 기획
사 직원 송아무개(35)씨는 "올 여름 한 미국인 성악가를 10만달러에 계
약해 초청했으나 문화부에는 5만달러로 신고한 뒤 나머지 5만달러는 여행
사 직원에게 부탁해 빼돌린 돈으로 미국에서 지급했다"며 "지금까지 이
런 방법으로 3~4차례 외화를 유출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송씨는 "국내 공연시장이 열악해 세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신고
액과 실제 계약액에 차이를 둘 수밖에 없다"며 "그 차액을 메우기 위한
외화 밀반출이 상당히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괌으로 단체여행을 다녀온 노아무개(27.여)씨는 "출발 당일
공항에 나가보니 여행사 직원이 사전에 한마디 말도 없이 내가 해외로 갖
고 나갈 수 있는 5천달러를 모두 환전해 가버렸다"며 "항의를 하자 `현
지 숙박료 및 여행사 알선료를 지급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다"고 말했
다.
여행사 직원에 의한 대리환전은 지난달 1일부터 개정된 외환관리법이
시행되면서 금지됐으나 아직도 관행적으로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해외 단체관광의 경우 대개 10~50여명씩이 한꺼번에 나가기 때문에 이
들의 해외경비 한도액 5천달러씩을 모두 바꾸면 5만~25만달러 정도는 쉽
게 빼돌릴 수 있는 실정이다.
경찰청 외사과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암달러 중개상이 가명으로 계
좌를 개설해 놓고 고객이 원화로 입금한 뒤 해외 은행계좌에서 찾아가도
록 하는 `환치기'' 수법이 성행했으나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입출금 내역
이 국세청에 통보되면서 이런 수법이 통하지 않게 됐다"며 "최근 들어
일부 여행사 직원을 이용한 외화 밀반출 수법이 성행한다는 첩보를 입수
해 내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