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3년4월 프랑스 파리주재 공사로 부임했는데 이 시기에는 유럽과
우리나라의 경제협력이 크게 증진되고 있었다. 한.불경제혁력위원회를
비롯 한.독 한.영등 협력위원회도 이때 구성됐다.

내가 프랑스에 부임해 얼마되지 않았을 때이다. 김종필국무총리가
유럽순방길에 파리를 방문했다. 사이공이 공산월맹에 넘어가고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소위 닉슨독트린을 선언, 아시아의 안보가 크게 흔들리며
북한의 김일성은 환갑을 서울에서 지내겠다고 호언하는 등 국제정세,
특히 아시아의 정세가 매우 불안한 때였다.

또 당시 국내정세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유엔외교방향도 바꾸고 우리의 안보사정을 유럽우방들에 이해시키며
경제협력도 강화하기위해 김총리가 유럽을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와의 경협문제중 가장 중요한것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이었다.
경협문제를 협의하기위해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탱 재무장관(후에
대통령으로 당선)과 김총리가 회담을 가졌다. 이때 내가 김총리를 모시고
회담에 배석했다.

김총리는 우리의 경제발전상과 경협의 필요성, 그리고 그동안 프랑스정부가
우리에게 제공한 협력사항등을 설명하고 앞으로 원자력발전소건설을 비롯한
몇가지 사업에서 기술및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지스카르 데스탱 재무장관은 "한국과 같이 발전하는 나라와
경제협력을 증대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는것은 프랑스로서도 매우 좋은
일이며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사업을 위해 프랑스가 타당성조사도
하고 기술검토도 해 지원을 했는데 최종단계에 가서는 그 사업이
다른나라로 넘어가더라. 그러니 프랑스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지않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것은 서울지하철 1호선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프랑스의
기술지원을 받았으나 공사는 일본이 하게된일에 대해 프랑스가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김총리는 지스카르
레스탱재무장관을 만나기전에 이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사전에
부리핑받아 알고있었기 때문에 그일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앞으로는 그런일이 절대로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이같은 프랑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가시적인것을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마침 프랑스가 이웃 독일 영국등과 공동으로 개발한
여객기 에어버스의 아시아지역 판매문제가 걸려 있었다. 프랑스는 한국
일본 태국등을 대상으로 이 여객기의 판매활동을 활발히 전개했으나
각국마다 애프터 서비스문제로 인해 다른나라에서 먼저 구입 운용하면
자기들도 구입한다는 입장이어서 진전이 잘되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는
김총리의 방불을 계기로 대한경협문제와 관련지어 에어버스 구매협조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래서 김총리는 함께 수행한 대한항공의
조중훈회장에게 요청, 에어버스 3대를 구매할것을 결정하고 즉시
프랑스정부에 통고하여 프랑스의 불만을 해소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의
에어버스판매가 촉진됐고 대한항공도 그 기종의 성능이 좋고 경제성이 높아
많은 효과를 얻어 그후 여러대 더 구매하기도 했다.

또 74년엔 대한항공의 파리취항이 이루어지게돼 파리의 오리공항에서
성대한 취항식이 거행됐다. 원자력발전소는 그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결국 70년대 말에 타결됐으며 현재 완공되어 순조롭게 가동되고
있다.

파리에 3년근무하는 동안 나는 독일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등 유럽여러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들의 역사와 문물을 익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것이 나에게는 매우 유익했으며 프랑스를 이해하고 세계에
대한 식견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