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가 어제 정부에 즉각적인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민생 회복을 위한 직접 지원과 대규모 지역화폐 발행”을 촉구했다.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는 추경이라면 내용은 얼마든지 열어놓고 협의하겠다”던 이재명 대표의 지난 3일 발언과 확연히 차이 난다.추경이 필요하지만 추경은 시기와 내용 면에서 효율성을 최우선 고려해야 한다. 현금 뿌리기 추경이 아니라 ‘돈 쓸 곳’을 잘 찾아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역동성을 높일 수 있는 곳에 재정이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대규모 지역화폐 발행’을 고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당은 2025년 예산안 심의 때도 대규모 지역화폐 발행을 주장하다 정부와 합의가 안 되자 일방적으로 감액 예산안을 처리해버렸다. 경기가 부진하다며 정작 경기 부양에 역행하는 모순된 조치였다.지금 당장 추경보다 급한 건 내수 부양 법안의 국회 통과다. 탄핵 정국으로 내수 심리가 위축된 데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수출 여건도 더 악화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한국은행(1.9%)보다 낮은 1.8%로 제시했다.정부는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서 내수 부양을 위해 소비 진작책과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책을 내놨는데 이를 이행하려면 27개 법 개정이 필수다. 신용카드 추가 소득공제, 노후 차 교체 시 개별소비세 70% 한시 감면, 소상공인 점포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인상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여야가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무산된 반도체특별법, 국가기간전력망확충법, 고준위방폐장법 처리도 다급하다.여·
지난해 11월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가 전년 대비 18만 명 줄어 25개월 연속 감소했고, 20대 ‘쉬었음’ 인구는 6만5000명 증가해 청년 고용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반면 지난해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는 300인 미만 사업체의 인력 부족이 48만3000명에 달해 청년 실업과 기업의 인력난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4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 청년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69.7%로 OECD 1위지만, 정작 기업들은 경력직 수시 채용을 선호해 대졸자 정기 공채 기회가 줄고 있다. 그 결과 청년들은 첫 일자리를 얻기 위해 평균 12개월 동안 외국어, 코딩, 자격증 등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서울과 대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은 지방 중소기업과의 일자리 미스매치를 심화하고 있다.정부는 청년 일자리 매칭을 위해 다양한 지원금 정책을 시행 중이다. 청년 근로자를 6개월 이상 고용한 사업주에게 최대 72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 일자리 도약장려금’에 작년 6078억원을 투입했고, 올해는 18개월 이상 근속 청년에게 최대 480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신설해 7772억원을 배정했다. 이외에도 ‘일자리 채움 청년지원금’ 등 청년고용을 장려하는 여러 지원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런 지원금은 주로 단기 고용을 유도하는 데 그치며 지원금 종료 후 고용이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그 결과 청년들은 적성에 맞지 않는 스펙 쌓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기업은 직원의 잦은 퇴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정부 정책이 청년의 역량과 기업의 직무를 맞추기보다는 지원금 중심의 ‘머니매칭’에 치중돼 있기 때문이다.미국은 약 10년 전부터 청년고용 문제를 해
쿠사마 야요이, 요시토모 나라, 무라카미 다카시를 잇는 일본 미술의 ‘다음 주인공’은 누굴까. 가장 유력한 작가는 아야코 록카쿠(42)다. 그는 불과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계 미술 시장에서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쿠사마에 이어 두 번째(2023년 세계 경매 낙찰 총액 기준) 자리에 올랐다. 록카쿠의 무지갯빛 작품은 특유의 생동감과 발랄함으로 가득하다.록카쿠의 첫인상은 작품에서 연상되는 ‘소녀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에 담긴 무게감과 관록이 분위기를 지배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차분한 목소리로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그의 말에는 단단한 자기 확신이 있었다. 서울 이태원동 쾨닉서울에서 열리는 록카쿠의 개인전을 계기로 그를 만났다. 손끝에서 나온 ‘기쁨의 에너지’록카쿠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낙서를 할 때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스무 살 무렵, 친구들이 취업을 선택할 때 전업 화가의 길을 택했다. 어느 날 손가락에 묻은 물감을 무심코 옆에 있던 종이 박스에 비벼 닦았다. 그런데 물감이 흡수되고 흘러내리며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선이 생겨났다. 그 이후 록카쿠는 아이처럼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맨손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록카쿠의 작품은 곧바로 미술계의 눈에 띄었다. 스물한 살이던 2003년 ‘게이사이 아트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았고, 2007년 네덜란드에서 전시를 열면서 유럽에 진출했다. 이후 15년 넘는 세월 동안 동서양 미술 애호가의 사랑을 두루 받았다. 한때 몇만원이면 살 수 있던 그의 작품은 이제 수억원에도 구하기 어렵다. 그만큼 수요가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