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쿠라와 아사노는 비교적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아사노가 잔을 단숨에 쭉 비우고 도로 내밀자,이와쿠라는 이제 나는
됐다면서 그잔에 다시 술을 가득 따라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귀공도 잘 아시겠지만,나는 이번 일에 대해서 단단히 각오를 한 몸
이라구요. 속개된 회의에서도 그렇게 끝내 반대를 하면 이번에는 도리가
없어요. 비상수단을 쓰는 수밖에."

"비상수단이라니요?"

그러자 이와쿠라는 대답 대신 품안으로 한손을 찔러넣어 간직하고 있는
단도를 꺼내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니."
아사노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진정한 왕정복고를 위해서는 이 한목숨 바쳐도 아까울 게 없어요.
큰일에는 으레 피가 따르게 마련이니까요" "호-" "그러나 가능하면 피를
보지 않고,일이 원만히 진행되어 나갔으면 해요. 피는 흘리는 것보다 안
흘리는 편이 나으니까요"

그말의 뜻을 아사노는 알아차렸다는 듯이, "좋아요. 그러면 내가
야마노우치공을 설득해 보도록 하죠" 하고 말했다.

곧 아사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야마노우치가 쉬고있는 별실로 갔다.
야마노우치는 마치 참선이라도 하는 사람 같은 자세로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심정이 여전히 매우 착잡한 모양이었다.

아사노가 바짝 다가가 앉으며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야마노우치공,내말좀 들어보오"
야마노우치는 가만히 눈을 떴다.

"큰일났어요"
"큰일나다니요?"
"저. 잘못하면 우리가 살아서 이곳에서 나갈 수가 없을지도 몰라요"
"뭐라구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야마노우치의 얼굴에 긴장된 표정이 역력히 떠올랐다.

"다음 회의에서도 계속 반대를 하면 비상수단을 쓸 것 같다구요"
"누가요?"
"누군 누구겠어요. 이번 일의 주모자지요"
"이와쿠라가?"

아사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음-"
야마노우치는 크게 분노하면서도 무척 당황하는 듯 안색까지 변하며
무거운 신음소리를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