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투자기관에 근무한적이 있다는 권병순씨가 대기업중역의 세계를
주제로 쓴 글(월간중앙 8월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국영기업임원은 보수에 관계없이 비공식 수입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부분이 인사와 이권으로 살이 찐다"

이같은 평가는 회사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물론
힘들다. 그러나 감사원이 매년 이맘때 내놓는 정부투자기관결산검사서에
나타난 각종 비리를 보면 "참으로 썩은데가 많구나"하는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다.

작년의 경우 23개 정부투자기관에서 이같은 비리를 저질러 문책을 당한
사람은 모두 69명. 한전(13명)이 가장 많고 수자원공사(12명) 통신공사
(9명) 토지개발공사(6명) 국민은행(6명)순이었다.

검사서에 나타난 투자기관의 비위는 대개 뇌물수수등 부정행위와
무사안일로 조직에 해를 끼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비리의 유형이 "다채로운" 토개공의 경우를 한번 들여다 본다.

토개공은 공단이나 주택용지로 활용키 위한 토지개발과 토지비축을 위한
토지매매가 주업무다. 땅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뒷거래"가 따라붙는
경우가 많다. 개발업무는 토지매입-용지개발-매각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마다 약방의 감초격으로 비리가 끼여든다.

토지매입에는 먼저 위장주민보상 수법이 쓰인다. 땅을 사들이면서 현지에
살지도 않는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필요없는 보상금을 주게되니
택지공급원가를 높이게 된다. 땅값이 비싼 일본보다 우리나라 공단의
분양가가 높은 이유도 여기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토개공의 분당신도시직할사업단에선 무자격자에게 이주자택지를
공급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이와관련,지난4월 규정위반자 5명을 문책토록
했다. 토개공 직원들은 자신들도 속는 경우가 많다며 비리의 주범은
자신들이 아니라 전문적인 "꾼"들이라고 하소연한다.

개발과정에 들어가면 토개공은 공사를 건설회사에 발주한다. 이때
현장직원이 시공회사직원에게 돈을 받고 부실공사를 묵인하기도 하는데
신문 사회면에 가끔 등장하는 메뉴이다.

개발된 땅을 매각하는 과정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매수자가
토개공으로부터 사들인 땅을 지정용도에 다른 용도로 사용해도 슬쩍
눈감아 주는 케이스가 많다는게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토지개발과정의 비리는 그러나 그나마 "조막손"들의 차지다. 진짜
"큰손"은 비축을 위한 매매과정에 개입한다. 가장 전형적 수법은
"고가매입 저가매도"다. 싯가보다 비싸게 사주거나 싸게 팔아주어서
상대방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것이다. 심지어 분묘이장비중 운송비를
신고요금보다 1억7천만원 더 지급해 감사원의 주의를 받은적도 있다.

이를위해 "토개공은 토지가격평가를 공정성이 큰 감정원에 맡기기보다는
개인감정평가사에게 맡겨 감정평가자체를 왜곡시키기도 한다"(경제기획원
관계자) 결탁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땅사주기도 매매과정의 비리다. 토개공은 작년에 대우조선이
자구노력 일환으로 내놓은 부산 수영만 매립부지를 사들이려 했었다.
상업용지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주택을 짓기에는 부적합한 땅이었다.

최종매입단계에서 토개공사장이 바뀌어 이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사례는 비일비재 하다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토개공이 매입해 놓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방치해 놓은 땅은 이래서 생겨난 것이다.

감사원이 지적하는 또 다른 유형의 비위인 무사안일.

이같은 비위도 조직을 멍들게 한다. 주인이 없기때문에 "내것이냐
네것이냐"는 식으로 돈을 물쓰듯 하는게 습관처럼 돼 있는가 하면 잘못된
관행이 지속되면서 예산을 낭비하기 일쑤다. 일례로 가스공사의 경우
분리발주하면 싸게 살수있는 기화기와 액화천연가스(LNG)탱크트레일러를
일괄발주해 2억원의 돈을 더 썼다고 한다. 투자기관의 비위발생은
"주인의식부족과 관료적 타성에서 비롯된다"(감사원관계자) 비위발생을
막기위한 근원적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말이다.

<안상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