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애초 방침에서 후퇴해 실명전환 내역을 조사하지 않을 뜻을 분명
히해 실명제 긴급명령이 사실상 사문화될 위기에 처했다.
재무부 당국자는 10일 "위장실명 사례는 당사자
의 소유권 분쟁이나 세무당국의 일상적인 정보활동에 의해 밝혀질 것"이
라며 "종합과세가 시행되는 96년까지 이렇게 적발되는 경우 외에는 별도
의 실태조사 계획이 없다"고 조사방침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정부는 실명제 도입 당시 모든 금융거래를 실소유주 명의로 하도록 돼
있는 법조문에 따라 일정액 이상 고액 계좌에 대해 실소유 여부를 일제
또는 선별 조사할 방침이었으나, 최근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이럴 경우 침
체된 경제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며 조사 포기를 종용해 방침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에 따르면 막바지 들어 신분노출을 꺼린 가명예금주가 제3자의
명의로 실명 전환한다든지, 차명예금을 차명 상태로 실명확인하는 등 편
법 실명전환이 증권.단자 등을 중심으로 폭넓게 일어나고 있다. 또 형식
상 실명이어서 적발이 어려운 차명예금은 상당액이 실명전환 의무를 어기
고 차명 상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내용상으로는 광범위한 불법사태가 존재하고 있는데도 당국은
명의와 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 번호가 일치하면 실명으로 간주하고 이
것이 틀린 극소수 가명예금에 대해서만 제재를 가할 방침이어서 실명제가
껍데기로 흐르고 있다.
또 정부가 애초 비실명예금 제재방침에서 이렇게 후퇴함으로써 차명상
태로 실명확인을 받거나 형식상 실명인 차명계좌를 그대로 둔 예금주들은
거의 제재를 받지 않는 반면, 차명에서 실명전환한 성실 예금주들만 소득
세 추징, 국세청 통보 등 불이익을 입어 형평성에 큰 문제를 낳고 있다.
은행권 가명계좌는 7일까지 실명전환율이 70.8%(2조2백52억원)에 이르
고 있으나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차명의 실명전환은 1조원으로 총 예
금의 0.7%가 채 안된다.
이와 관련해 한은 고위관계자는 "은행의 경우 1억원 이상 고액계좌 수
가 26만개 정도이기 때문에 조사 의지만 있으면 내역을 밝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면서 "실명전환 내역을 조사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긴급
명령으로 법석을 떨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