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월 파키스탄의 군참모총장 아시프 나와즈는 자택에서 운동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수사당국은 타살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지만
가족들은 독살당했다고 주장,그의 머리카락 분석을 미국의 전문기관에 의뢰
했다.

최근 전문가들은 아시프가 장기간에 걸쳐 비소에 중독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군대영내에서 먹은 음식물에 비소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과도정부는 이에 따른 가족들의 재수사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고대 소아시아의 도시국가 폰티우스의 왕 미트리다트 4세
(기원전 132~63년)도 음독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는
자기를 독살하려는 적들의 음모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매일 독을
마셨는데 조금씩 음독하되 양을 늘려감으로써 독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
나갔다.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는지 독살이 어려워지자 적들은 그의 부하를
시켜 암살토록했다.

지금도 이렇게 내성을 키우는 방법을 가리켜 그의 이름을 따
"미트리다타이즈"(mithridatize)라고 하고 해독제로 쓰이는 당과를
"미트리다트"라고 부른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아시프처럼 시대상황이나 법과 제도 주변환경에
강요당해서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속에 독을 마시거나 미트리다트처럼
자진해서 독을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축적된 독의 심한
중독현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그리고 정치 사회 경제 모두가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는게 아닐까.

가공식품과 공해는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성장제일을 내세운 타률과
보호,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당화되었던 권위주의는 우리경제에서 활력을
빼앗고 있다. 절망적인 마비상태에선 어디가 아프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체질개선과 구조조정을 외쳐대며 몸부림치지만
이미 중독된 몸과 체제는 거부의 몸짓을 강하게 내보인다.

우선 내부에 축적된 독소를 씻어내야만 하는데 그러려면 금단현상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가 도우려는 사회분위기부터 조성되어야 한다.
담배를 끊으려고 서두르다가 실패하면 금단현상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두번다시 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