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인"은 역시 명작이다. 지난 여름 어느날 저녁 텔레비전에 재방영된
"셰인"을 다시 보면서 또 한번 느꼈다. 볼때마다 새로운 맛과 새삼스레
가슴저미는 감동을 준다.

모든 서부영화가 다 그렇듯이 특히 이 영화는 끝장면을 놓치면 그 맛을
모른다. 어린시절 총싸움이 어찌될까 긴장을 해서 또 악당들을 다 처치한
후 표연히 떠나는 뒷모습에 감동해서 놓쳤던 부분들이 이제 나이가 들면서
침착하게 들여다보니 그것들이 보인다. 마지막 결투에 들어가기 전에 의례
말싸움이 있다.

셰인 "너는 너무 오래 살았어. 너 따위 인간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악당 "네 시대도 가버렸어. 이 총잡이야"
악당들을 다 처치한 후 셰인은 석양속으로 떠나가고 소년 조이는
돌아오라고 불러댄다. 여기까지는 다른 영화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말을 타고 있는 그의 왼쪽 어깨는 처져있고 짙어가는 어둠속에 놈고있는
언덕 왼쪽에는 묘지의 음산한 모습이 대비된다. 셰인의 죽음을 암시한다.

서부는 이제 또돌이 총잡이의 품팔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에의해 질서와 평화가 공적으로 보장된 세상에선 총과 완력이라는
사적장치는 더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마치 남북전쟁이 끝나고 나니까
남부출신의 패잔병뿐만 아니라 싸움에 이긴 북부출신 군인들까지 쓸모가
없어져버린 형국이다.

변화에 적응치 못한 시대의 낙오자들이 서부의 황야를 떠돌아다니며
서부활극의 무대나 제공하던 시대를 연상시킨다.

공산주의가 몰락하자 승자인 서방세계의 내부가 흔들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냉전시대를 지탱하던 이데올로기가 국민들에게 호소력을
상실한채 대체가치를 못찾아 방황하고 있다. 한때 권위주의의 불법적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정당화되었던 폭력과 그때의 주역들. 모두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패자와 승자가 다같이 죽어서 역사의 묘지속에
묻혀버리는 "셰인"으 상징성이 돋보이는 요즈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