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휴가동안 "개미"(베르베르작,이세옥역)라는 소설을 읽었다.
그속에는 쥐의 역학관계에 관한 재미난 관찰기록이 나온다. 물 건너편에
먹이를 두고 쥐 여섯마리를 놓아두었더니 여섯마리가 모두 건너는 것이
아니라 세마리만 건너가서 먹이를 가져왔다. 그런데 그중 두마리는
기다리고 있던 두마리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한마리만 제몫을 지켰다.
남아있던 한마리는 찌꺼기나 얻어먹는 천덕꾸러기 노릇을 했다.

그후 행해진 스무번의 실험에서도 똑같은 구조, 즉 착취자 두마리,
피착취자 두마리,독립적인 쥐 한마리,천덕꾸러기 한마리가 나타나곤 했다.
착취자 쥐만을 골라 한 우리에 넣었더니 역시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여전히 착취자 두마리가 왕초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실험의 원래의도는 쥐의 머리를 해부해 보니 왕초 두마리가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더라는 발견이었다. 나에겐 오히려 쥐의 세계에도 나름으로
위계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흥미를 끌었다. 쥐들도 일종의 공동체사회
로서 이를 지탱해주는 안정된 질서와 문화적룰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쉽게 변치않는 강한 복원력이 있어 제도적 개혁같은 외부충격이 가해
지더라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이성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 인간사회라 할지라도 표출된 사회질서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적를, 다시말해서 정서 기풍 관습과 같은
요소의 영향을 무시할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때문에 똑같은 제도의
도입이라도 민족과 문화의 차이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까.
이번에 전격실시된 금융실명제의 충격을 받아들이는 우리경제사회의
문화적 바탕은 어떤 모습일까.

15년전에 세부담의 형평성과 과학적인 근거과세로서 우리나라의
납세풍토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것 처럼 출발했던 부가가치세가 60%가
넘는 과세특례자를 인정하는등 종래의 영업세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서구에서 운영되는 본래 모습과는 다르게 우리사회에 자리잡은 것을보면
실명제의 앞날을 걱정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