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단상] 외무부의 영수증..정규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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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복판 정동15번지. 옛날 러시아 공관부지 6천여평을
둘러싼 3년여의 협상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23일부터 27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협상에서 양쪽은 모두 상당한
양보를해 남은 것은 보상금액을 둘러싼 실무협상으로 범위가 좁혀졌다.
러시아측은 원상회복의 포기를, 우리측은 금전보상(배상이 아닌)을
제시해 해결의 길은 열린 셈이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우리외무부의 협상태도와 접근방법을
비난해두지 않을수 없다. 우리측은 이땅에 대한 러시아의 소유권을
원천부정하는 것으로 배수진을 쳤다. 소유권을 부정하는 것은 사실과도
부합하는 것이어서 나무랄수 없다. 문제는 그 방법에 있었다.
우리측은 지난2년동안 러시아측에 대해 러시아가 이땅을 샀다는
토지매입증서 또는 영수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법률및 사실의
검토가 충분히 있었는지 아니면 "없을게 분명하다"는 일종의 배짱이었는지
모르지만 이같은 일종의 트릭은 집요한 러시아측 노력으로 물거품이 됐다.
러시아측은 결국 먼지투성이 문서보관소에서 당시 외베르공사의 토지
매입에 관한 보고서를 방증자료로 찾아냈다. 그리고 우리측은 금세
협상의 수세에 몰렸다.
국왕이 서울속의 이 "로서아"땅으로 피신해 들어갔던 아관파천의 역사까지
분명한터에 "영수증이있으면 보자"는 식으로 임했으니 한심한 논리구사가
아닐수 없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외에 새로 추가된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은 어땠느냐는 반성과 재검토를 외무부는 보다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실제 러시아는 46년6월 서울의 공간을 "자진포기하고" 평양으로 옮겨간
사실을 만겨두고 있다. 이를 축으로 20세기 전체에 걸쳐 수도없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영수증운운함으로써 외무부는 스스로의 논리적 기초를 허물어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논리의 정당성과 정합성을 잃었다는데 있다.
문제가된 1880년에서 10여년 거슬러 가면 그곳엔 북경조약이 있다.
명백히 국제법상 무효인 이조약을 통해 연해주땅은 러시아로, 만주땅은
청으로 넘어갔었다.
러시아와 우리나라의 외교협상은 19세기초부터 출발했다는 점을
당국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할것이다.
외교는 책략보다는 원칙의 견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둘러싼 3년여의 협상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23일부터 27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협상에서 양쪽은 모두 상당한
양보를해 남은 것은 보상금액을 둘러싼 실무협상으로 범위가 좁혀졌다.
러시아측은 원상회복의 포기를, 우리측은 금전보상(배상이 아닌)을
제시해 해결의 길은 열린 셈이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우리외무부의 협상태도와 접근방법을
비난해두지 않을수 없다. 우리측은 이땅에 대한 러시아의 소유권을
원천부정하는 것으로 배수진을 쳤다. 소유권을 부정하는 것은 사실과도
부합하는 것이어서 나무랄수 없다. 문제는 그 방법에 있었다.
우리측은 지난2년동안 러시아측에 대해 러시아가 이땅을 샀다는
토지매입증서 또는 영수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법률및 사실의
검토가 충분히 있었는지 아니면 "없을게 분명하다"는 일종의 배짱이었는지
모르지만 이같은 일종의 트릭은 집요한 러시아측 노력으로 물거품이 됐다.
러시아측은 결국 먼지투성이 문서보관소에서 당시 외베르공사의 토지
매입에 관한 보고서를 방증자료로 찾아냈다. 그리고 우리측은 금세
협상의 수세에 몰렸다.
국왕이 서울속의 이 "로서아"땅으로 피신해 들어갔던 아관파천의 역사까지
분명한터에 "영수증이있으면 보자"는 식으로 임했으니 한심한 논리구사가
아닐수 없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외에 새로 추가된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은 어땠느냐는 반성과 재검토를 외무부는 보다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실제 러시아는 46년6월 서울의 공간을 "자진포기하고" 평양으로 옮겨간
사실을 만겨두고 있다. 이를 축으로 20세기 전체에 걸쳐 수도없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영수증운운함으로써 외무부는 스스로의 논리적 기초를 허물어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논리의 정당성과 정합성을 잃었다는데 있다.
문제가된 1880년에서 10여년 거슬러 가면 그곳엔 북경조약이 있다.
명백히 국제법상 무효인 이조약을 통해 연해주땅은 러시아로, 만주땅은
청으로 넘어갔었다.
러시아와 우리나라의 외교협상은 19세기초부터 출발했다는 점을
당국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할것이다.
외교는 책략보다는 원칙의 견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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