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비망록] (55) 이희일 전 동력자원부장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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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장마가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이 금년에도 몇차례
지나갔다. 얼마전에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A급태풍 "로빈"이 우리나라
남해안을 향해 북진, 모두 긴장하고 걱정했으나 큰피해없이 동해로 빠져
나가 다행이었다.
지금 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 보면서 지난날 태풍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때로는 가뭄피해를 막기 위해 현장에서 뛰던일, 50년대 암울했던 우리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정부에 들어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작성하면서
고생했던일, 그리고 그때 나와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
동안 겪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주마등같이 내머리를 스쳐간다. 그러면서
어제와 오늘을 견주어 보고 또 내일을 생각해 보게된다.
엊그제까지만해도 무덥던 여름이 어느새 쓰르라미가 우는 가을로 접어
들고있다. 말복도 지난 요즘 아침 저녁은 벌써 서늘한다. 마당에 꽃이
피고지고 열번만 하면 내인생도 황혼이라고 여긴지도 벌써 5~6년이 지났
으니 세상도 무상하다.
그동안 나는 내가 생각하고 겪었던 일생의 보람과 5개년계획의 뒷이야기
들을 한번 글로 엮어 볼까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지만 망설이던차에
한국경제신문에서 지면을 할애해 주어 용기를 갖고 펜을 들었다.
지난 30여년동안 7차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행하면서 우리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60년대초 이전의 암울하고 가난했던
세월을 딛고 일어서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90년대 들어와 민주화과정을 겪으면서 우리경제가 주춤거리고 있긴
하지만 다시 도약해 2000년대초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수있는 저력을
충분히 갖고있다고 믿는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고 발전의 저력을
키우는데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피땀나는 노력과 남모르는 어려움이
있었다.
지난 개발연대에 경제개발계획을 작성하고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국
근대화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 그들중에는 지금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도 많고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들도 있다.
나는 1차 2차 3차 5개년계획의 작성과 집행, 그리고 개발연대의 경제
정책입안에 직접 참여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보아왔다.
경제기획원에서 일한것이 대부분이지만 경제담당 공사로서 해외에서
경제협력을 위해 노력도 했고 청와대에서 3년동안 박대통령을 직접
모시기도 했다.
1979년 10월26일 농수산부장관으로서 박대통령의 마지막 공식행사였던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을 주관하고 그해말에 20여년에 결친 공직생활을
마쳤다. 이것이 나의 공직생활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으나 지난 88년
13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90년엔 다시 행정부에 들어가 91년 5월까지
동력자원부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경제개발에 다시 참여할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젊음을 경제개발5개년계획작성에 불사르고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조국
근대화 노력에 바쳐왔던 나는 경제개발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중의
한사람으로서 무한한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5개년계획 작성과정과 그동안
보고 경험한 일들을 정리해 적오보고자 한다.
글재간이 없어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잃게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일해온 6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발에 참여했던 많은 선배 동료
들의 얽히고 설킨 숨은 이야기들을 기록에 남겨 후일에 참고가 될수
있다면 더없는 보람이라 생각한다.
지나갔다. 얼마전에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A급태풍 "로빈"이 우리나라
남해안을 향해 북진, 모두 긴장하고 걱정했으나 큰피해없이 동해로 빠져
나가 다행이었다.
지금 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 보면서 지난날 태풍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때로는 가뭄피해를 막기 위해 현장에서 뛰던일, 50년대 암울했던 우리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정부에 들어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작성하면서
고생했던일, 그리고 그때 나와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
동안 겪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주마등같이 내머리를 스쳐간다. 그러면서
어제와 오늘을 견주어 보고 또 내일을 생각해 보게된다.
엊그제까지만해도 무덥던 여름이 어느새 쓰르라미가 우는 가을로 접어
들고있다. 말복도 지난 요즘 아침 저녁은 벌써 서늘한다. 마당에 꽃이
피고지고 열번만 하면 내인생도 황혼이라고 여긴지도 벌써 5~6년이 지났
으니 세상도 무상하다.
그동안 나는 내가 생각하고 겪었던 일생의 보람과 5개년계획의 뒷이야기
들을 한번 글로 엮어 볼까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지만 망설이던차에
한국경제신문에서 지면을 할애해 주어 용기를 갖고 펜을 들었다.
지난 30여년동안 7차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행하면서 우리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60년대초 이전의 암울하고 가난했던
세월을 딛고 일어서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90년대 들어와 민주화과정을 겪으면서 우리경제가 주춤거리고 있긴
하지만 다시 도약해 2000년대초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수있는 저력을
충분히 갖고있다고 믿는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고 발전의 저력을
키우는데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피땀나는 노력과 남모르는 어려움이
있었다.
지난 개발연대에 경제개발계획을 작성하고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국
근대화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 그들중에는 지금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도 많고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들도 있다.
나는 1차 2차 3차 5개년계획의 작성과 집행, 그리고 개발연대의 경제
정책입안에 직접 참여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보아왔다.
경제기획원에서 일한것이 대부분이지만 경제담당 공사로서 해외에서
경제협력을 위해 노력도 했고 청와대에서 3년동안 박대통령을 직접
모시기도 했다.
1979년 10월26일 농수산부장관으로서 박대통령의 마지막 공식행사였던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을 주관하고 그해말에 20여년에 결친 공직생활을
마쳤다. 이것이 나의 공직생활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으나 지난 88년
13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90년엔 다시 행정부에 들어가 91년 5월까지
동력자원부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경제개발에 다시 참여할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젊음을 경제개발5개년계획작성에 불사르고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조국
근대화 노력에 바쳐왔던 나는 경제개발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중의
한사람으로서 무한한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5개년계획 작성과정과 그동안
보고 경험한 일들을 정리해 적오보고자 한다.
글재간이 없어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잃게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일해온 6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발에 참여했던 많은 선배 동료
들의 얽히고 설킨 숨은 이야기들을 기록에 남겨 후일에 참고가 될수
있다면 더없는 보람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