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가 아닌,개국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막부의 중신으로서 오가사하라는
속으로 몹시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도리없이 꾹 눌러참고,

"귀측의 세 가지 요구조건을 잘 알았소. 그럼 그에 대한 답변은 다음 회담
때 하기로 하고,오늘은 이만 끝내도록 합시다. 본인 단독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니까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일차 회담을 끝마쳤다.

오가사하라로부터 회담 결과를 보고받은 중신들은 영국측의 요구조건 세
가지를 놓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두번째의 범인 인도만은 그들의 요구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첫째의 공개사과는 거절하고,셋째의 배상문제
는 절충을 해야 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오가사하라는 이차 회담 때는 자신이 영국공사관을 찾아가 닐 공사와
만났다. 이차 회담 때도 닐 공사는 세가지 요구조건을 관철하려고 들었다.
오가사하라는 공개사과는 불가하고,배상금만은 요구 금액의 절반을 지불
하겠다고 하였다.

이차 회담에서 타결이 되지가 않자,다시 두어 차례 더 만나 밀고당긴 끝에
결국 비공개로 구두 사과를 하기로 했고,그리고 배상금은 요구대로 이십만
폰드를 지불하되,그중 절반인 십만 폰드는 당장 막부가 내놓고,나머지는
사쓰마번으로부터 받아내어 지불하겠다는 선에서 합의를 보았다.

합의된 대로 막부측에서는 정치총재인 마쓰다이라가 닐 공사에게 사과의
말과 함께 배상금 십만 폰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배상금 나머지는
사쓰마번으로부터 인수하여 지불하기로 했고,범인 인도 역시 사쓰마 쪽에서
체포하여 압송해 오는 즉시 넘겨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렇게 일단 영국측과 사건의 뒤처리를 매듭지은 막부는 에도의 사쓰마
번저를 통해서 범인의 압송과 배상금 잔액의 송금을 명하였다.

그런데 사쓰마의 답변은 희한한 것이었다. 실제로 영국인 리처드슨의
목을 자른 자는 도모가시라인 나라하라기사에몬이었고,또 먼저 칼을
휘둘러서 리처드슨을 말에서 떨어뜨린 자가 누구였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오카노신스케(강야신조)라는 유령 인물을 내세워서 그가 저지른
일인데,처벌이 두려워서 도망을 쳤으니,잡는 대로 에도로 압송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배상금도 함께 가지고 가겠다고 하였다. 완전히
기만적인 수법이었다.

그렇게 하여 사쓰마번은 책임을 차일피일 미루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