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비판들이 있었다. 이제는
이런 빈정거림조차 걸맞지 않게 한국경제는 국제경쟁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런 속에서 그동안 잠복되어있던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됐다. 그리고 일부에선 성급하게 다시 샴페인을 터뜨리려 한다.
한국경제 정책방향의 승리를 자축하는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아직 이르다.
실명제 다음날부터 증권시장에선 주가가 폭락했다. 금융실명제가 경제
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은 아닌것이다.

금융실명제는 개혁중의 개혁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명이나 차명은 극히
일부분이어서 소수를 향한 개혁이다. 개혁의 방향은 다수를 향한 개혁
이어야 하며 그러자면 금융실명제는 그것 자체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경제전반의 성공에 의해서만 진정한 의미를 지닐수 있다. 경제를 잘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실명제가 되어서는 교각살우가 되기 쉽다. 그래선
안된다.

정부는 실명제의 일시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과제이며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양약이 될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견해가 있을수
있다. 일시적 충격은 어차피 가라앉을 것이나 장기적으로 경제의 물길이
어떻게 흐를 것인가가 문제이다. 과거 8.3사채동결조치나 5.8부동산조치
등이 일시적 충격보다는 장기적 경제부작용이 문제였다.

돈은 경제활동의 매개이며 혈이다. 돈이라는 혈액이 줄어들고 순환이
잘되지 않으면 경제체질은 병약해질수 밖에 없다. 사회정의와 올바른
경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금융실명제는 꼭 필요한 제도이다. 그런데
그것이 불가피하게 몰고올 동맥경화증을 뚫어낼수 있는 유인이제공되지
못하면 실명제의 정의는 부작용의 물결에 의해 포락되고 말것이다.

한마디로 경제활동의 조장없이는 가명을 쓰고 퇴장될 귀중한 혈액을
다시 순환하게 하기 어려운 것이다. 요즘 우리사회는 이윤동기를 여러
방면에서 억누르고 있다. 그러니 산업활동의 위축은 말할것도 없다.
국내최대의 신발회사가 공장을 뜯어치우고 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는
것이 근래 한국경제의 자화상이다. 거기에다 "하지말라"는 것이 너무
많다.
업종전문화로 규제하고,토지거래허가제로 억제하고,호화사치업소라고,
환경보호에 어긋난다고, 경제력 집중이라고 규제하는 금기들이 도처에
그물처럼 쳐져있다. 쉬운 말로 돈을 벌수 있어야 경제가 되는 것인데
돈을 어디서 벌라는 것인가.

업종전문화만 해도 그렇다. 하고싶은 일을 하게 해야 업종전문화도 될수
있는 것인데 실질적으로 정부에 업종선택권 이 옮겨가면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고 외국의 수많은 회사들이 국내시장에 물건을 팔수 있는 새 체제에서
국내특정업체에는 특점제품을 만들수 없게 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수
없다. 종국적으로 국내외시장의 소비자들이 선택해햐할 일을 정부가
선택하려는 데서 "하지말라"는 규제들이 속출하는 것이다.

실명전환예금에서 3천만원이상을 인출할때는 국세청에 통보하게 되어
있는데 이중에는 수표도 포함된다. 그런데 수표는 실명이며 추적도 가능
하고 집에 보관하고 있어도 예금된 상태와 같은 것인데 이를 국세청에
통보한다는것 자체가 일을 못하게 하는 발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금융기관엔 자금이 흐르지 않고 예금이 줄어들면서 중소기업들은 자금을
융통하기 어려워 난리인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결코 바라지 않는
현금통화만 불어나고 있다.
정부의 힘은 어떤 것을 못하게 하는데 효과를 발휘한다. 어떤 일을 하게
하는데도 힘이 된다. 그러나 일을 잘하게 하는데는 그야말로 한계가 있다.
스르스 우러나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잘할수 있는 것이다. 경제는 못하게
하는것, 또는 그럭저럭하게 하는것 만으로는 발전할수 없다. 결코 국제
시장을 기업인들보다 잘알수 없는 관이 "해선 안된다"는 일을 많이
만들고,어떤 일만 하라는 식으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경제의
보틀네크이라고 볼수 있다.

3.4분기 4.4분기엔 경제가 다소나마 회복되리라던 막연한 기대마저
실명제의 돌출로 물건너갔다는 얘기마저 나돈다. 그러나 실명제는 꼭
정착시켜야 하고 이것이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할수 있는 일을 많이 터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명제로 탈세의 구멍을 막는 대신에 이윤동기가 왕성해지도록
각종 세율을 적정한 수준으로 내리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돈을 벌수
없는 고세율로서는 부패만 조장될뿐 경제발전을 이룰수 없다. 또한
사회정의를 생각하되 최소한의 인간본성을 무시하면 경제는 발전보다
교착에 빠지고 만다.

금융실명제가 경제정의 소득재분배 부패척결 지하경제일소의 필요조건
일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경제발전이 따르지 않으면 실명제의 대의도 허사가 된다. "할수있는
일"을 많이 터주는것이 실명제성공의 전제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