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이렇게 탄생했다> 이부총리등 10여명 극비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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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실시방안은 과천 제2종합청사앞 45평짜리 주공 5단지 아파트에
서 탄생됐다. 산파는 이경식부총리,홍재형재무장관외에 재무부및 한국개발
연구원 국세청 국민은행 관계자등 실무자 10여명정도였다.
지난4월 이부총리는 경제기획원 자문관인 양수길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
위원과 역시 선임연구위원인 남상우박사에게만 실명제실시방안을 지시했고
홍장관에게 특별작업반구성을 요청,작업이 시작됐다. 이들이 구체적인 작업
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것은 첫지시가 있은지 한달정도 뒤였다.
실무작업에 참여한 재무부관계자는 김용진세제실장과 김진표세제심의관 임
지순소득세제과장 진동수해외투자과장및 임동빈 최규연 백운 사무관등이다.
이들은 이유없이 자리를 비우면 탄로날까봐 진과장은 아프다는 핑계를 댔고
사무관들은 해외출장발령을 받아 직속 상관도 모르게 아파트에서 합숙을 했
다. 가족에게도 작업사실을 숨겨 정작 발표당일 재무부에서 이들을 소집하
자 집에선 "병원에 가서 연락이 안된다" "아직 해외출장에서 돌아오지않았
다"고 말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후문.
김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하는 12일 오후 7시 30분전에 내용이 새어나가면
난리가 날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아 보안유지에 극도로 신경을 썼고 그로인
해 박재윤 청와대경제수석외에는 청와대관계자들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이부총리집과 대치동 국제투자연구원사무국에서 수시로
밤을 새워가면서 작업을 했고 7월중순부터는 과천 주공아파트 505동 304호
에서 합숙체제로 들어가 시행방안을 가다듬었다.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갑
자기 아파트에 나타나 고성능 컴퓨터등을 들여놓고 일을 하자면 주위의 오
해을 살까봐 방학을 맞아 대학교수들이 통일방안연구를 한다"고 연막을 치
면서 보안을유지했다.
실명제실시가 이달로 결정된것은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조차 임박해서야 알
정도로 대통령이 한두명의 말을 듣고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시기는 중순으로 잡은뒤 14일은 토요일이어서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있
을 것으로 판단,12일로 결정했다. 택일이된것은 사흘전인 9일 오전이었다.
실무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달여만에 엄청난 작업을 해낼수있었던 것은
이들이 왕년에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 진과장과 최규연사무관은 지난 89
년 두번째로 실명제를 추진했을 때,임사무관은 82년 7.3조치로 처음 시도했
을때 작업을 했던 사람들. 이들과 세제전문가인 김용진실장 김진표세제심의
관 임지순소득세제과장등 베테랑이 있어 대사를 이뤄낼수있었던것.
한 관계자는"실명제실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그렇게 강한 줄은 몰랐다
"며 "경제에 미치는 충격과 대통령의 의지를 조화시키는게 가장 어려웠다"
고 밝혔다.
이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은 실명제실시후 금융자산에 대한 종합과세를 하
는것보다는 자신의 금융자산은 자신의 이름으로 거래해야한다는 금융거래의
정상화에 더큰 관심을 갖고있었다는 것. 특히 사정활동을 진행하고 고위공
직자의 재산공개를 하면서 비정상적인 재산형성에 놀라워했다고 한다.
실무자들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증시에 미치는 영향,실명전환예금중 자
금출처조사를 하지않는 범위,차명예금의 실명전환문제등이었다.
실무작업반은 증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주식양도차익과세를 신경제 5개년계획기간중 하지않겠다는 점을 대통령담화
문에 못박자고 건의,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실명전환예금중 얼마만큼을 자금
추적대상으로 삼지않을 지도 고민거리였다. 금액이 많으면 비정상적 거래를
대가없이 양성화시켜주는 꼴이 돼 형평의문제가 제기될수도있고 너무 적으
면 자금추적과정에서 혼란이 야기될수있어 적정금액결정이 어려웠다는것.
실무작업반은 과거에 일을 해본 경험이 있더라도 워낙 짧은기간에 전격 처
리함으로써 시행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생길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민의 여망
이 담긴 대사를 드디어 발진시켰다는 자부심만은 뿌듯하다고 말했다.
서 탄생됐다. 산파는 이경식부총리,홍재형재무장관외에 재무부및 한국개발
연구원 국세청 국민은행 관계자등 실무자 10여명정도였다.
지난4월 이부총리는 경제기획원 자문관인 양수길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
위원과 역시 선임연구위원인 남상우박사에게만 실명제실시방안을 지시했고
홍장관에게 특별작업반구성을 요청,작업이 시작됐다. 이들이 구체적인 작업
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것은 첫지시가 있은지 한달정도 뒤였다.
실무작업에 참여한 재무부관계자는 김용진세제실장과 김진표세제심의관 임
지순소득세제과장 진동수해외투자과장및 임동빈 최규연 백운 사무관등이다.
이들은 이유없이 자리를 비우면 탄로날까봐 진과장은 아프다는 핑계를 댔고
사무관들은 해외출장발령을 받아 직속 상관도 모르게 아파트에서 합숙을 했
다. 가족에게도 작업사실을 숨겨 정작 발표당일 재무부에서 이들을 소집하
자 집에선 "병원에 가서 연락이 안된다" "아직 해외출장에서 돌아오지않았
다"고 말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후문.
김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하는 12일 오후 7시 30분전에 내용이 새어나가면
난리가 날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아 보안유지에 극도로 신경을 썼고 그로인
해 박재윤 청와대경제수석외에는 청와대관계자들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이부총리집과 대치동 국제투자연구원사무국에서 수시로
밤을 새워가면서 작업을 했고 7월중순부터는 과천 주공아파트 505동 304호
에서 합숙체제로 들어가 시행방안을 가다듬었다.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갑
자기 아파트에 나타나 고성능 컴퓨터등을 들여놓고 일을 하자면 주위의 오
해을 살까봐 방학을 맞아 대학교수들이 통일방안연구를 한다"고 연막을 치
면서 보안을유지했다.
실명제실시가 이달로 결정된것은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조차 임박해서야 알
정도로 대통령이 한두명의 말을 듣고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시기는 중순으로 잡은뒤 14일은 토요일이어서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있
을 것으로 판단,12일로 결정했다. 택일이된것은 사흘전인 9일 오전이었다.
실무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달여만에 엄청난 작업을 해낼수있었던 것은
이들이 왕년에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 진과장과 최규연사무관은 지난 89
년 두번째로 실명제를 추진했을 때,임사무관은 82년 7.3조치로 처음 시도했
을때 작업을 했던 사람들. 이들과 세제전문가인 김용진실장 김진표세제심의
관 임지순소득세제과장등 베테랑이 있어 대사를 이뤄낼수있었던것.
한 관계자는"실명제실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그렇게 강한 줄은 몰랐다
"며 "경제에 미치는 충격과 대통령의 의지를 조화시키는게 가장 어려웠다"
고 밝혔다.
이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은 실명제실시후 금융자산에 대한 종합과세를 하
는것보다는 자신의 금융자산은 자신의 이름으로 거래해야한다는 금융거래의
정상화에 더큰 관심을 갖고있었다는 것. 특히 사정활동을 진행하고 고위공
직자의 재산공개를 하면서 비정상적인 재산형성에 놀라워했다고 한다.
실무자들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증시에 미치는 영향,실명전환예금중 자
금출처조사를 하지않는 범위,차명예금의 실명전환문제등이었다.
실무작업반은 증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주식양도차익과세를 신경제 5개년계획기간중 하지않겠다는 점을 대통령담화
문에 못박자고 건의,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실명전환예금중 얼마만큼을 자금
추적대상으로 삼지않을 지도 고민거리였다. 금액이 많으면 비정상적 거래를
대가없이 양성화시켜주는 꼴이 돼 형평의문제가 제기될수도있고 너무 적으
면 자금추적과정에서 혼란이 야기될수있어 적정금액결정이 어려웠다는것.
실무작업반은 과거에 일을 해본 경험이 있더라도 워낙 짧은기간에 전격 처
리함으로써 시행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생길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민의 여망
이 담긴 대사를 드디어 발진시켰다는 자부심만은 뿌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