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실시방안은 김영삼대통령의 지시로 이경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KDI(한국개발연구원)박사들과 재무부실무진들을 동원해
5개월여간의 비밀스런 준비를 통해 마련됐다.

박재윤경제수석을 비롯한 청와대팀은 예상과 달리 이에 참여하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담화가 있기 바로직전인 12일 오후5시까지 청와대의
주요경제비서진은 발표내용을 거의 몰랐을 정도.

담화발표후 박수석은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함구하며 "모든 세부적 내용은
재무부장관이 발표창구가 된다"고만 언급,청와대의 역할이 크지 않았음을
짐작케했다.

신정부출범직후 김대통령은 이부총리에게 자신의 대선공약인 금융실명제
실시방안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하면서 실명제 준비작업은 막이 올랐다.

이부총리는 애초에는 KDI와 경제기획원 실무진에게 기존 금융제도의
문제점과 실명제를 실시할 경우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검토하도록 지시했고 이를 수시로 검토했다. 그러나 그후 보안유지상
경제기획원쪽은 배제됐다.

6월초 첫번째 보고
6월초에 첫번째 대통령보고를 통해 김대통령은 실시방침을 굳히고
구체안을 마련토록 이부총리에게 다시 지시했다.

이때부터 이부총리는 남상우KDI부원장 양수길부총리자문관
김준일KDI연구위원에게 구체안의 골격을 마련토록 했고 이들은 수시로
연구결과를 부총리에게 보고했다.

이때에 전격실시방안이 대충 굳혀졌고 증시에는 전격실시설이 나돌았다.

7월초 이부총리는 김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그동안 마련된 초벌구이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때 김대통령은 실명제는 모든 금융자산에 대해 예외없이 실시하고
주식양도차익에 관한 과세는 준비가 안돼있고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금융자산종합과세에서 제외토록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따라 금융실명제 3단계 실시방안중 거래실명제와 금융자산종합과세의
2단계까지만 실시하고 주식양도차익과세라는 3단계실시방안은 뺀다는
대원칙이 정해졌다.

기본골격을 김대통령으로부터 하달받은 이부총리는 실무적인 문제에 대한
검토에 들어가기로하고 홍재형재무장관과 협의,실무요원을 차출해 주도록
요청했다.

이때부터 재무부의 김용진세제실장 김진표세제심의관 임지순소득세제과장
진동수해외투자과장등이 실명제준비팀에 합류했다.

89년초안바탕 작업
김실장을 작업반장으로 한 실무준비팀은 시내 두개 호텔에 안가를
마련,7월 한달간 주로 밤에 모여 비밀작업을 거듭했다.

이미 지난89년 금융실명제 실시준비단에서 마련한 실명제실시 초안을
바탕으로 이들은 12일 발표된 내용의 구체적 내용을 채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재무부내에서도 장관과 실무자를 제외하고는 이들의
야간비밀작업을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들의 실무작업이 한달여만에 끝날수 있었던 것은 이미 89년에 검토했던
초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경제5개년계획이 발표되던 7월초에도 실명제
실시준비는 다 되어있으되 시기선택만 남았다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실시방안을 마련한 실명제준비팀의 마지막 과제는 시기선택의 문제.

8월.내년1월 고심
이들의 대원칙은 금융거래가 가장 한가한 달을 택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맨먼저 8월선택안과 내년1월선택안을 놓고 고심하다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어렵더라도 조기에 실시한다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8월을 선택하고 충격을 줄이기위해 과거 긴급조치때와 마찬가지로
주말에 발표키로 했다.

그러나 이번 주말인 14일을 택일할 경우 경축일인 광복절(15일)의
분위기가 악화될 우려가 있었다. 그렇다고 13일(금요일오후)을 택할 경우
금융기관이 토요일 오전만으로는 준비가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목요일인 12일 금융거래가 끝난 저녁으로 최종 낙점했다고 홍재무장관은
설명했다.

한편 이부총리는 사석에서 장관직에 있는동안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이
개인적 목표라고 밝힌 적이 있으나 그가 실명제추진의 주체였는지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이부총리는 한때 증시에 전격실시설이 나돌자 강연장을 통해 이를
부인하는등 연막을 쳐 보안유지에 극도의 신경을 썼다.

<안상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