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10월27~37년 8월9일)이 동향친구이자 영화계 동료인 윤봉춘선생(19
02년3월23일~75년 10월20일)과 함께 오는 15일 광복 48주년을 맞아 독립운
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받는다.
영화계인사 중 독립운동과 관련해 훈장을 받기는 이들이 처음이다.
나선생 등은 함북 회령출생으로 15살때인 지난 16년 간도의 명동중학으로
유학을 가 독립정신을 키웠다.
이들은 19년 4월초 회령교회 최경재목사의 지도를 받으며 3.1독립선언문
수천매를 비밀리에 등사하고 시위행진용태극기도 수천개 만들었다.
그러나 시위를 벌이기 몇시간 전 동료 1명이 일본경찰에 발각되자 곧바로
시위를 벌이다 윤선생은 체포돼 징역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나선생은 도망쳐 홍범도장군이 지휘하는 북간도 국민회 소속 독립군에 입
단했다.
출소한 윤선생도 독립군에 합류해 나선생과 함께 회령과 청진을 잇는 회청
선 7호터널 폭파와 전선절단공작에 참여하고 군자금모금 밀정잡기등의 활동
을 했다.
이들은 지난 22년 배신한 동료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잡혀 고향으로 압송
되고 각 1년6개월형을 언도받고 복역했다.
윤선생은 이때 받은 고문으로 늑골 1개를 잘라내야하는등 고초를 겪었다.
이들은 복역후 출소해 민족혼이 담긴 영화를 제작해 일제치하에 민족정신
을 일깨우는 영화인으로 한평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