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그룹 해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정부가 기업활동에 개입
할수 있는 여지가 사실상 없어지게 됐다.

부실기업정리가 법적근거도 없는 초법적인 공권력의 남용으로 분명히 정의
된 탓이다. 30일 아침 이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과 홍재형 재무장관
박재윤 경제수석등이 긴급회동을 갖고 "앞으로 부실기업정리는 주거래은행
의 자율적인 결정에 맡기겠다"는 점을 재다짐한것도 이때문이다.

아침회동후 이부총리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사법적 판단인 만큼 존중돼야
한다"며 "신경제5개년계획에서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있듯이 부실기업정리에
정부가 간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기업이 부실해졌는지에
대한 판단에서 부터 처리형식,인수대상자 선정등을 주거래은행의 독자적인
결정에 넘기겠다는 얘기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단순히 부실기업정리 문제에 그치지 않을 것
이라는게 정부당국자들의 인식이다.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행해져온 투자조정과 기술도입 허용여부 등에 대한 결정도 민간
자율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안이
부실기업정리의 위헌여부를 다루고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법률에 근거
가 없는 공권력개입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 대목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
이다.

실제로 법률적 근거도없는 "행정지도"를 빙자해 정부가 기업활동을
좌지우지 해온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비근한 예로 92년초에는 석유화학
투자조정이 있었다. 업체별로 생산해도 좋은품목과 생산해서는 안되는 품목
을 정부가 찍어주는 조치였다.

물론 당시에도 해당업계의 자율적인 조정이 선행됐으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부가 부분적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게 상공자원부의 설명
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관련업계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을 보면 무리한 압력
이 가해졌던게 틀림없다.

"엘렉트로21"(전자핵심기술및 부품개발계획)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적 핵심
기술개발 과제인 만큼 기업의 투자계획을 무분별하게 허용할 수 없다는게
기본 취지였고,역시 정부가 나서서 울타리를 쳐주었다. 물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기업은 상당한 규모의 정책자금을 지원받게 될 뿐 아니라 경쟁기업
에 비해 월등히 앞선 기술을 확보하게 되는 이점이 따르는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부문별 조정과정을 전후해 잡음이 일수밖에 없었다.

기술도입에 대한 허용도 마찬가지다. 관련법규에 따르면 기업이 기술도입
을 "신고"할 경우 경쟁제한 규정에 하자가 없으면 20일안에 "수리"해주게
되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수리해도 좋은가를 당국이 판단한뒤 실제로는
"허가"해 주는게 당연시 되왔다. 업계에서도 공연히 정부에 밉보일 필요가
없어 정부의 처분에 순응해왔다.

이번 헌재의 판결로 이같은 관행은 이제 대수술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도
이에 맞추어 대응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부실기업정리는 헌재의 결정대로 주거래은행의 "사적 자치"의 영역
으로 가게된다. 부도를 내서 경매에 부치든 은행관리나 법정관리를 받게
하든 은행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의 부실기업 정리가 은행
의 부실채권정리 차원으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재무부는 은행이 부실채권을 조기에 정리할 수 있도록 부실채권을 20년
균등분할 상각액 만큼만 손비인정해 주고 있는 것을 앞으로는 20년이내
이더라도 상각액 전액을 손비로 인정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또 투자조정은 업종별 산업발전 협의회의 자율조정에 맡기기로 해놓고
있다. 과잉 또는 중복투자를 이해당사자끼리 조정토록 한다는 것이다.
기술도입은 원칙적으로 신고만으로 가능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함께 공업발전법에 따른 합리화 업종 지원도 직권지정을 폐지하고 해당
업계의 요청이 있을때만 지정토록할 방침이다.

결국 이번 헌재의 결정은 공권력과 기업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에 대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결정으로 정부쪽의 변화는 예상보다 빨리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업과 은행의 수용자세다.

정부의존 체질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홀로 설수있는 역량을 스스로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정만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