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을 얘기하다 보면 역대 유엔극동군사령관들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더글러스 맥아더,매슈 리지웨이,제임스 밴 플리트장군의
면면들이다.

맥아더는 지난 64년 84세,밴 플리트는 지난해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데
이어 마지막으로 리지웨이가 98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것도 교묘하게
휴전40돌이 되는 7월27일보다 하루 앞선 26일에 타계한 것이기에 남다른
감회를 안겨 준다.

미국인들은 리지웨이를 2차대전의 10대명장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는다.
육군의 마셜 맥아더 아이젠하워 브래들리 패튼장군,해군의 니미츠
하루제제독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별중의 별이다. 대독전에서
82공수사단과 18공수군단을 이끌고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독일등지에서
찬연한 전공을 세운다. 특히 시칠리아섬 공략에서는 미육군사상 최초의
대공수작전을 감행하여 유럽남부 교두보를 확보했는가하면
노르망디상륙때는 공수부대를 이끌고 적후방에 침투하여 용맹을 떨친다.

리지웨이의 두번째 전쟁터는 한국. 50년말 미8군사령관인 월튼
워커장군이 전사하자 육군성의 작전참모부장으로 있던 리지웨이중장이
후임이 된다. 그는 사령관 취임서에서 한국전쟁의 의미를 뚜렷이 밝힌다.

"지금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공산주의가 승리하느냐,개인의 자유가
승리하느냐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한국에서 목격하고 있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역경을 구해 주느냐,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한국민들을 빈곤과
절망에 빠뜨리느냐하는 것이다"

그가 취임할 당시의 전황은 중공군의 남진으로 극히 불리한 입장이었다.
그는 지장답게 "최소한의 우군 손실,최대한의 적 타격"전법으로 지연전을
편 끝에 전세를 만회한다.

51년 맥아더원수가 유엔극동군사령관직에서 해임되자 리지웨이는 대장으로
승진되면서 그 자리를 이어 받아 한국전쟁을 총지휘하게 된다. 그 다음해
사령관직을 8군사령관인 밴 플리트에게 넘겨주고 유럽연합군최고사령관으로
영전된다. 53년에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2년의 임기를 마친뒤 38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한다. 지난 91년에는 2차대전의 전공으로 군의 최고명예인
"의회금장"을 받기도 했다.

"성실한 군인들은 전쟁이 가공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기뿜의 순간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전우애속에서 느끼는 기뿜,전투정신의 향상과
정예군인들의 확신에서 생기는 기뿜과 자부심,춥고 어려운 날이 끝날 때의
따스한 불과 식사의 기뿜이 그것들이다"그의 회고록 "한국전쟁"에서 그의
따사로운 군인상을 읽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