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연해주및 중앙아시아지방에서 활동하던 국어학자 북우
계봉우(1880~1959)의 저작물및 연구성과가 최근 공개됐다.

고송무씨(카자흐공화국 과학원 동방학연구센터 한국학연구부 부장)는
지난1일 한글회관에서 열린 한글학회주최 특별연구발표회에서 발표한
"계봉우의 생애와 우리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선문법" "조선말의
되어진 법" "이독집해"등 계봉우가 쓴 책들을 입수해 우리학계에 보고했다.

중국과는 달리 소수민족의 언어정책에 무관심했던 구소련에서 활약한
국어학자의 소개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국어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계봉우는 함남 영흥출신으로 교편을 잡다가 1919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그곳에서 우리 말을 연구하는한편 2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다.

이후 37년 한인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 크즐 오르다지방에 정착했다.
38년부터 러시아정부의 결정으로 한인학교가 없어지고 한족들이 러시아말로
공부하게 되자 그는 교사활동을 그만두고 저작활동에 몰두,모두14권의 책을
저술했다.

이번에 공개된 책들은 계봉우의 아들 계학림이 당시 소련 과학원
동방학연구소에 기증한 것들이다.

"조선문법"(1947.184면)은 47년께 카자흐지방에서 우리말 교육문제가
논의됐다가 갑자기 없어진 것을 계기로 계봉우가 집필한 문법서.

그는 이책에서 우리말 품사의 수를 10개로 규정하고 있으며 격사 종지사
접속사등을 품사에 넣고 있는게 특색이다. 체언 용언외에 관능언이라는
것도 규정해 놓고있다. 연해주지방의 원동에서도 철자법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차례 회의를 거쳐 30년에 완성시켰다고 그는
이책에 적어놓고 있다.

"조선말의 되어진 법"(1955.175면)은 우리말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밝히고 있는 책. 그는 이책에서 우리말은 "어근을 딸아서"쓰기를
강조,말의 어원을 세밀히 찾아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머리"를
"멀이","아버지"를 "압아지","오늘"을 "온흘"로 써야한다고 역설했다.

"이두집해"(1943.74면)에서는 서문이나 차례없이 이두로 적힌 어미
7백27개를 본체 본어 현어 셋으로 나누어 정리한 것. 무슨 책을 참고했고
당시 한국에서 나온 이분야연구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않고있으나 역사와 지리에 쓰인 이두의 흔적을 찾고있다는것이
고송무씨의 분석이다.

고송무씨는 이책을 검토한 결과 계봉우의 우리말연구는 문법과 기원연구등
크게 둘로 나눌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그가 한반도에서 살지않았다
하더라도 주시경 김두봉등의 우리말연구의 흐름을 책을 통해 접할수
있었고 당시 조선어학회의 활동도 알고있었으며 이학회와 언어규정에 대해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 하지는 않았다는 것도 알수있다고 밝혔다.

고씨는 한글을 지키고 보전하려는 계봉우의 노력은 빛을 보지못한채
사라져갔으며 이결과는 카자흐및 중앙아시아 고려사람들이 현재 자신들의
말을 잊어버리고 잃어가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따라서 이같은 그의 노력과 저작들이 이지방의 우리말
되찾기운동에 밑거름이 되도록 재조명하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고씨는 이책들을 한글학회에 기증했다.

<오춘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