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라가쿠베에(상량각병윙)였다. 사이고는 사가라와 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하급 관원시절 그자도 비슷한 직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자가
이섬의 책임자로 와있다는 것을 알고있긴 했으나,찾아간 것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의 대면은 매우 어색했다. 한 사람은 섬의 지배자 격이고,한
사람은 시마나가시가 되어 온 죄인이지만 옛날에는 동격의
동료였고,그러다가 얼마전까지는 한쪽이 월등히 직위가 높은 번의
중신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사이고가 그냥 인사차 찾아간 것도 아니고
항의를 하러 갔으니 더욱 어색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
사이고는 처음에는 제법 정중히 인사를 나누었다. 두 사람의 뒤바뀐
현재의 위치를 생각해서 말이다. 그러나 곧 그는 서슴없이 할말을
털어놓았다.
사이고의 항변을 듣는 사가라는 속으로 같잖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마나가시가 되어온 죄인인 주제에 건방지게 무슨 그따위 소리를
나불대느냐 싶었다. 그러나 사이고의 지난날의 위력을 알고있는 터이라,꾹
눌러참고 듣고 있었다.
사이고의 항변이 끝나자,사가라는 콧대를 삐딱하게 휘며 입을 열었다.
"류큐의 흑설탕이 우리 사쓰마의 재정을 크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오? 당신이 그걸 모를 턱이 없잖소" "알고 있어요" "알고 있으면서
어찌 그런 소리를 하는거요? 번청으로부터 이섬의 연생산량이 하달되어
있단 말이오. 어떻게 해서든지 그 할당량 이상의 흑설탕을 사쓰마로
보내야 된다 그거요. 그게 내 책임이오" "물론 책임을 완수해야지요.
흑설탕의 공출량에 대해서 누가 뭐랬나요.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은
삼가시는게 좋겠다고 했죠. 어린 아이가 자기네 사탕수수를 좀 씹었다고
해서 그 애비를 말뚝에 밤을 새워 묶어놓다니,그게 말이 되나요? 그런
비인도적인 처사는 오히려 섬사람들의 반감만 살 뿐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리고 우리 사쓰마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기도 하고요" "모르시는
말씀이오. 섬것들은 그렇게 다루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아요. 좋은 말로
해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거요. 그리고 우리 사쓰마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니,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되는데요. 기리수데고멘은 그럼 뭔가요?
우리 일본 본토에서도 일반 백성들의 목은 사무라이들이 마음대로
날려버릴수 있는데,하물며 직할령의 섬것들에게 벌을 준다고 해서 그것이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