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있고 오답이 있듯이 음악을 들을 때는 정청(audlation)이 있고
오청이 있다. 정청은 음악을 옳게 듣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물리적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음악적 소리를 물리적 소리 없이도 들리는 소리다. 이 때문에 정청하는
사람은 "없는 소리"도 듣는다.

아이가 소리를 들었다고 하자,이 말은 소리를 물리적으로 들었다는 뜻도
되고 음악적으로 들었다는 뜻도 된다. 음악을 모르는 아이의 귀에
어떤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물리적 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

"워 시 환 인 위 애"라는 소리가 물리적으로만 들렸다고 하자.
물리적으로만 들렸다는 말은 그 소리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소통수단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뜻이다. 듣기는 들었으되 그 의미를
해독하지 못하고 들으면 정청이 아니다.

"워 시 환 인 위 애"라는 소리는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라는 중국말이다.
중국말을 모르는 아이는 오청을 할수밖에 없다. 음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청이 아닌 오청을 하고있다.

음악교육은 눈 교육이 아니고 귀 교육이다. 단순한 머리 교육이 아니고
머리에 붙은 가슴의 교육이다. 악보가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악보를 가르친다는 것은 눈과 머리의 교육이지 귀와 가슴의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려는 부모는 음악교육에 있어서 정청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음악을 가르치고 싶은 부모는 교육의 시작을 중요시해야
한다. 악보를 가르친다든가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해서는 안된다.
악보나 피아노 치는 것을 가르치기전에 정청을 가르쳐야 한다.

음악을 끝없이 듣게 해야 한다. 음악의 존재 방식을 모국어의 존재
방식과 같게 해야한다. 모국어가 아이의 귀 주변에 언제나 있듯이 음악을
아이의 귀 주변에 언제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