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퇴니스는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를 논함에
있어 공동사회를 심정적으로 공감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세상살이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항변일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주집에 둘러앉아 얼큰해 질라치면 모임 또는
서클을 만들려고 기를 쓰는 모양이다.

우리 무치의촌 진료 봉사팀(KODA)도 지난 85년 대학가 소주집에서
탄생했다.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전공을 과감히 포기하거나 타과
졸업 또는 뒤늦게 철이 나 학업에 뛰어든 늙은 학생들이 친목도 다지고
보람있는 일을 하기 위해 KODA를 만든 것이다. 회원들의 개성이 강해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초대회장 황귀한씨(역곡치과원장)와 총무
김경준씨(김경준치과원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년이 채 못돼 모든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의 형태를 갖추었다.

지금은 회원들이 선후배가 아닌 형님 아우로 부르며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KODA가 본격적인 봉사서클로 거듭 태어난 것은 지난 87년 새회장
김종우씨(청주에서 개원)와 필자가 우리들이 배운 전문 지식과 기술을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웃을 위해 베풀자고 나서자 회원들의 호응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이때부터 KODA는 모여서 한잔 꺾는 즐거운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통해 더 큰 보람을 만끽하는 모임으로 승화된 것이다.

봉사활동에 필요한 기본의료 장비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회원들의
열의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 뭉클한 것이었다. 장학금과 융자 받은
학자금을 부모 몰래 기부한 회원들도 있었고 하숙비를 털어내놓은 회원도
있었다.

기본의료 장비를 갖추게 되자 우리는 주말이면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를
찾아 연일 진료 봉사활동을 했고 여름 겨울 방학때면 벽지 무치의촌을 찾아
장기 봉사활동도 했다.

회원들이 모두 졸업한 이후에도 우리들의 진료봉사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진료후 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사회발전의 그늘에 있는 그들의 삶을
통해 의료인으로서의 도리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의식을 느낄 때가
많았다.

요즘은 황선억 현회장을 비롯 최대영 김종선 정경태 오정진 유왕열씨등
치과병원을 개업한 KODA 1기들이 모임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우리의 뜻에 동조하는 많은 치.의대 후배들도 나서고 있어 언젠가는 전국의
무치의촌을 우리 손으로 돌볼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