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유행했듯이 한국인이야말로 큰 착각속에
살고있다. 적어도 아시아에선 일본 다음가는 대단한 국가가 된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그러나 착각은 오래 갈수 없다. 환상은 하나하나 깨지게
마련이다. 1인당 GNP만해도 한국은 겨우 아시아에서 5위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싱가포르와 홍콩의 1인당 GNP도 우리의 두배가 되고
대만도 1만달러를 넘어서 한국을 크게 앞질러 있다. 국제기구들은 아예
한국을 네마리용에서 탈락시켜 태국 말레이시아등과 같은 개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경제규모에 있어서도 중국은 이미 통화구매력기준으로 미.일다음가는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지속적 고도성장으로 1인당 GNP가 우리와 비슷하게
되면 국민총생산이 한국의 30배에 이르게 된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등도
개발이 조금만 더 진행되면 인구규모로 봐서 쉽게 한국경제의 규모를
능가할수 있다.

천연자원이란 면에서는 한국은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비하면 불모지와
다름없다. 외형적인 문화유산에 있어서도 궁전이나 유적등 무엇하나 크게
내세울 웅대한 것이 없다. 내년 "한국방문의 해"를 맞았을때
외국관광객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국제적인 눈으로 볼때 한국은 이처럼 아시아에서 가장 궁지에 몰려있어
속말로 으스댈 건덕지가 없는데도 우리는 벌써 선진국이 된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하와이 방콕등 세계적 관광지에는 한국인이 판을 치고 호화사치품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지경이다. 생산보다는 내몫 더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 이제 분배만 잘되면 선진국민 못지 않게 살수 있다고
오산하고 있다. 자기만 잘 살려고 온갖 비리를 겁내지 않고 과욕을 부리는
것도 이런 사회적 착각에서 비롯되고 있다.

용에서도 탈락한 한국경제 처지에서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은 기피하는
풍조가 만연하여 외국인 근로자를 쓰지 않고는 3D업종이 돌아갈수 없는
것도 우리들의 착각때문이다.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우리보다 1인당 GNP가
두배인 싱가포르 보다도 짧아졌으니 무슨 방도로 선진국을 따라잡을지
착각도 유만부동인 것이다. 지금도 산업체들은 고입금에 허덕이고 있는데
휴일 밤에 근무하면 잔업수당 휴일수당 야간수당을 중복 합산하여 2백50%의
임금을 줘야 한다고 하니 이 또한 한국경제의 현실을 환상적으로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산을 조장하겠다는 국가적 의지가 고려되었는지 의문을
품을수 밖에 없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생각할때 "6.25동란"은 옛날 얘기가 되었고
"고도성장신화"만이 희미하게 기억될것이다. 사실은 그 신화는 이미
깨진것이며 그것을 재건하자면 우리들의 피와 땀이 요구되는 것인데 신화가
아직 살아있다고 착각하는것이 문제다. 그 착각의 대가가 민족적 좌절로
이어질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살을 꼬집어 정신차려야 한다. 경제는
절대로 그럭저럭 굴러갈수 없으며 그럭저럭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역사상
없는 것인데 우리는 은연중 그런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몰락의 탈냉전시대이후 세계는 자본주의 국가끼리의 경제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그 경제전쟁은 두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국제시장에서의 각국 기업끼리의 경쟁이다. 또 하나는 자국기업을
지원하고 자국시장을 보호하려는 각국 정부간의 싸움이다. 클린턴
미대통령이 그 선봉에 서있으며 각국정부는 후방이 아니라 전방에서 기업을
위한 대리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전쟁의 구도가 이러한데 우리는 탈냉전이후 나라밖의 경쟁자를
내다보기 보다는 내부에서 정부와 기업간에,사용자와 근로자간에,생산자와
소비자간에 갈등을 벌이고 있으니 고도성장의 신화가 깨질수 밖에 없다.
이것도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안이한 착각에서 연유한 것이며
전사들을 기죽이고 이길수 있는 전쟁은 없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일본이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확보한 이후에도 끊임없는 위기의식으로
경제전쟁에 대응하고 있는 것도 국민적 착각은 한 나라의 아킬레스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의 축구경기에서 선수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사실도 착각해서는 안될 일이다.

마침 서울에서 20개국 인사가 참여하는 대규모 태평양경제협의회총회가
열리고 있다. 지역적 협력이 주요 의제이지만 그것도 경쟁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면 한국은 태평양시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
모든 경제주체들이 한국이 "준선진국"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 우리 분수를
올바로 바라보는 것이 해답을 찾는 첫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