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신문보기가 겁난다. 연일 교육계 비리가 지면을 메우고 있다. 그간
40년 대학교수로 몸 담아 온것을 오늘처럼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더욱이
6공말기 교육행정의 총수로 끌려나가 1년여,뜻을 펴 보지도 못하고 끝내
무위장관의 탈을 쓴 채 모든 공직생활을 마감한 것이 한스럽다. 특히
대학의 자율을 생명처럼 주장해 온 끝에 당한 일이 조직적인 대학입시
부정사태였으니 이에 관여했을 교수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정의를 가르치고 도덕을 강의하며 사회의 중견 역군을 양성하여야하는
대학이 공명정대하지 못하여 국민들로부터 모질게 질책을 당하고 있는 이때
교수들은 변명할 길이 없다. 문민정부의 권위로 대학의 각종 부정 부당
비리를 손댄 것은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벌보다는 그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조치라고 믿고 싶다.

지난날 운영이 부실하여 오늘의 곤혹을 겪는데는 정책의 잘못,사회의
편견,학원의 불안정등 학외적여건에 문제가 있었다하더라도 그 책임의 많은
부분을 대학이 져야한다. 그것은 대학이 내세운 건학이념에 비추어도
그렇고 대학이 지성의 집단이라는 점에 비추어 더욱 그렇다. 설사 대학
경영자가 무능하고 사악하다 하더라도 대학은 우리사회 지성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지성집단의 명예를 지키지 못한 교수들은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지난 수십년 대학들은 획일적 통제에 익숙해져 왔다. 특히 자율적 운영의
경험이 없었던 탓에 많은 대학들은 자율을 대학발전으로 승화시키지
못하였다. 등록금문제로 총장실이 학생들에 의해 점거되고 본부의
집기들이 마당으로 내 팽개쳐져도 교수들은 오불관이었다. 등록금의
인상분이 교수들의 요구대로 봉급인상으로 이어지지만,겪는 고통은 단지
보직자 몫이었다. 대학발전의 책임을 보직자에게만 떠넘겼다. 그들은
당연히 압력을 느꼈을 것이다.

미국뿐아니라 여러나라의 명문대학들은 재학생들의 탈락률이 30~40%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의 학사관리는 부실하기 짝이 없어
졸업까지의 탈락률은 가장 낮다. 입학만 하면 대도무문이다. 일찍이
우리나라 대학들이 학사운영을 철저히하여 재학생의 탈락률을 선진국
수준에 이르게했다면 입학과 관련된 비리는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입학하는 것보다 졸업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대학들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무리 뼈를 깎는 아픔이
뒤따른다 하더라도 교수들은 이를 견디어 대학의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기왕에 맡겨진 대학의 자율성에 금이 가지 않게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위하여도 대학은 새로 태어나야만 한다.

지난날 대학은 최고지성의 전당이라고해서 사회로부터 각별한 보호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며 그같은 거의 무조건적 보호와 맹목적 신뢰가 지난번과
같은 비리를 낳은 씨를 잉태하였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같은 감싸줌을 바랄 수는 없다. 아무리 부정하고 거부하더라도 대학은
결국 시장원칙에 내 맡겨지게 된다. 사회가 대학을 일류 이류 혹은 삼류로
구분할 것이고 대학의 우열차는 더욱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발전을 위한
자구적 노력이 부족한 대학,학사관리가 부실한 대학,재원을 불공정하게
운용하는 대학은 삼류대학으로 전락할 것이다. 사회는 그같은 대학을
키워야 할 이유가 없다.

결국 일류나 삼류냐는 바로 교수들의 행태와 의지에 달려 있다. 모름지기
교수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다져보자 "내가 일평생 몸받쳐 봉직해 온
대학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내 자식에게 남겨줄수 있겠는가"고.

교수들의 새로운 결의와 다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할 일도
있다. 이번의 대학 비리가 대학 자율성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통제체제로
되돌릴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와 경쟁상대국의 대학들이 소비하는
재원의 단지 7분의1 또는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 대학재정에
정부는 획기적으로 투자하여 교육질의 격차를 줄이도록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