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보는 거푸 하품을 해댔다. 그가 P읍에 와서 "주간P저널"기자로
취직한지가 벌써 한달. 그러나 지난 홍수때 되게 한번 바빠본 이후로는
지금껏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워낙 작은 읍인지라 벌어지는 일도
없었고,그래서 마땅한 취잿거리도 없었다.

8면이나 되는 지면은 "우리 고장 가볼만한 곳" "이 지역 출신
유명인사" "전설따라 삼천리" "맛있는 집"같은 고정기사 말고는 더이상
넣을게 없어서 늘 전전긍긍하는 판이었다. 그래서 1면 톱이라는게 "신장
개업한 삼거리갈비집,과연 성공할 것인가"같은 광고인지 기사인지
알쏭달쏭한 것들 투성이었다. 자칫 이대로 가다간 이번주 1면을 비워야될
판이었다.

기자정신이 투철한 오국장이 "뭐?기삿거리가 없어. 웃기는 소리말고
따라와"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보를 취재차에 태웠다. 잠시뒤
그들은 읍을 벗어났다. 산모퉁이를 돌자 농부하나가 소를 몰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오국장이 쌩하니 차를 몰더니 농부를 그만
들이받아버렸다. 창보가 "어!어"하고 소리쳤지만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난
뒤였다. 차에서 내린 오국장은 현장에서 즉사한 시체에다 사진기를
들이댔다.

"시골까지 몰아닥친 뺑소니 사고,자동차 운전자 윤리 실종"
다음날 P저널 톱은 이렇게 시작됐다. 8면중 3면이 이 사고 소식이었다.
사고현장상황,피해자 가족과의 인터뷰기사,뺑소니친 운전자를 격렬하게
나무라는 사설,그리고 현장사진으로 가득 채워졌다. P저널은 이 사건을
한달 내내 우려먹었다. 창보는 모처름 취잿거리가 생겨 신바람이
나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래도 되는건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했다.
어느날 창보는 신문철에 철해진 묵은 P저널을 들춰보게 됐다. 설달전에는
이곳에 낚시왔던 서울 사람이 누군가에 떼밀려 저수지에 빠져
숨진사건,그전에는 공동우물에 누군가가 독약을 풀어놓은 사건,여고교실에
출현한 수백마리 독사사건.. P저널 1면 톱이 백지로 나갈만하면 그때마다
새로운 큰 사건이 터져 백지를 채워주곤 했던 것이다. 창보를 더욱 놀래킨
것은 "P저널 취재기자 실종사건"이었다. 자기 전임자가 어느날 갑자기
실종돼 버렸던 것이다. 엽총에 맞아 타살된 전임자도 있었고,하숙집에서
독살된 전임자도 있었다. 창보는 온몸이 오싹해옴을 느꼈다. 기삿거리가
없을 때면 자기 전임자들이 몸으로 때워 1면 톱을 장식해줬던 것이다.

다시 한달이 지났다. 이제 정말 1면 머릿기사 쓸 것이 없었다. 이제
자기가 희생물이 될 때가 온것 같았다. 책상에 앉아 불안한 눈길로
건너편에 앉아 있는 오국장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자신만
불안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불안해 하는 것처럼 오국장도 불안한
눈초리로 창보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소리나 전화벨소리가 날
때마다 두사람은 화들짝 놀라면서 상대방을 째려 보곤 했다.

드디어 마감날이 됐다.

시간이 흘러 해가 졌는데도 기삿거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진짜
마감시간이 됐다. 그래도 끝내 기삿거리는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신문이 나왔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거기엔 1면 제목이
대문짝 만하게 인쇄돼 있었다. P저널 창간이래 최대의 특종이었다.

톱기사는 무엇이었을까.

[답] "본지 편집국장,사무실에서 피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