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를 마치고,세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을 나서자,나리아키는
자기도 일어나서 그의 뒤를 따랐다. 긴 복도를 걸어서 현관까지 따라나가
배웅을 하는 것이었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에도의 막부에서 온 고관일 경우 외에는 번의
다이묘가 방문객을 현관까지 따라나가 배웅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현관에서 그 선물 상자를 한손에 든 세키가 다시 깊이 머리를 숙여 작별의
예를 올리자,나리아키는 약간 목이 잠긴 듯한 그런 정감어린 목소리로,
"세키,잘 가게나" 하고는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번주로부터 선물과 함께 현관에서의 배웅까지 받고 저택을 물러나온
세키는 주기도 있는 터이라 묘하게 흥분이 되어 가슴이 벙벙하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약간 휘청거리면서도 붕 뜬 듯 가벼웠다.

집에 당도한 세키는 곧바로 자기 방으로 가서 앉은뱅이탁자 위에 납작하고
좀 길쭉한 그 나무상자를 내려놓고 그 앞에 꿇어앉았다. 다이묘로부터
선물을 받다니,감격스러운 일이어서 잠시 숨을 가다듬은 다음,그는 그
상자를 향해 고개를 가볍게 한 번 숙였다. 감사의 표시였다.

그리고 상자를 십자형으로 묶은 빨간 끈을 조심스럽게 끌렀다. 끈을
풀어낸 다음 상자의 뚜껑에 두 손을 가져가며 세키는, "아마도 벼루와 먹일
거야. 그리고 붓도 들어있겠지. 검도 사범에게
필묵(필묵)이라니,이상하지"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뚜껑을 열었다. 빠그락 하고 나무뚜껑이 열리자, "아니"
세키는 약간 놀란다.

아직 뭔지 확실히는 알 수가 없으나,분명히 벼루와 먹 따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얀 종이에 뭔지 길쭉하면서 도톰한 것이 싸여 있었다. 그것을 꺼내어
종이를 벗긴 세키는, "아이구 이거."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만다.

뜻밖에도 그것은 육혈포(육혈포)였다.

세키는 그 시꺼멓게 번들거리는 육혈포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듯 살핀다.
그리고 한손으로 그것을 들고 쏘는 시늉을 해본다. 제법 무겁다.
방아쇠를 당겨본다. 찰칵! 하고 쇠소리가 날 뿐이다. 탄환이 안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나무상자 안에 똘똘 종이에 싸인 것이 남아 있었다. 꺼내어 펼쳐보니
탄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