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세키로부터 세배를 받은 도쿠가와나리아키는 얼굴에 흐뭇한 기색을
떠올리며, "잘 왔네. 기다리고 있었지" 하고 말했다.

그말이 풍기는 뜻이 무엇이라는 걸 대뜸 짐작한 세키는,
"아,황공하옵니다" 하면서 또 한 번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사실대로
아뢰었다.

"대감 어른,실은 어제 낮에 세배를 드리러 몇몇 동지들과 같이
찾아왔습니다만,세배 사절이어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밤에 저 혼자서 방문했지요" "응,알고 있어"
나리아키의 표정이 약간 곤혹스러워졌다. 부하들의 세배까지 타의에
의해서 사절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 번주로서 창피했던 것이다.

"대감 어른,존체(존체)는 안강(안강)하시지요?" "응,크게 아픈데는
없지만,집안에만 들어앉아 있으려니 도무지 답답해서." "그러시겠지요"
세키는 부하로서 그런 말을 하는 다이묘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슬그머니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세키는 다이묘의 입에서 먼저 거사에 관한
무슨 말이 있으려니 하고 기다렸다. "잘 왔네. 기다리고 있었지"하고
말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기미가 느껴지지 않아서 세키는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그동안 대감 어른께서 하명이 있으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는가?"
또 침묵이 흐른다. 잠시후,세키는 다시 자기가 접근해 간다.

"대감 어른,해가 바뀌고 말았습니다. 고통스러운 세월이 너무 길지
않습니까?" "음-길지"
그리고 나리아키는 옆방에 대기하고 있는 시녀를 불렀다. 술상을
내오라는 것이었다.

뜻밖이어서 세키는 송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마 술을
마시고,술기운에 마음을 털어놓으려나보다 싶어 속으로 은근히 기대가
갔다.

잡시후,시녀가 술상을 날라왔다. 시녀를 나가게 하고,나리아키는 자기가
손수 술병을 들었다.

"자,잔을 들게. 내가 한잔 따라줄테니까" "아니올시다. 대감 어른,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의당 제가 먼저 따라올려야지요. 술병을 이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