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써서 화제가 된일이 있다. 이 변호사는 인천변협 협회지에 기고한
글에서 변호사들에게 스스로 부끄러워 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변호사사회의 부조리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경고한 것이다. 실제로
며칠전에는 두명의 변호사가 악덕변호사로 낙인찍혀 구속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변호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다.
변호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면 법치국가의 근간마저 위태롭게
된다.
홍일원변호사는 우리 변호사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소송 의뢰인들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홍변호사는
자유당시절 경향신문발행허가취소사건당시 재판장을 말아 정부패소판결을
내렸던 원로 변호사이다. 홍변호사는 해방이듬해인 46년 사법관시보에서
출발,거의 한평생을 법조인으로 생활해온 인물이다.
올해 79세로 아직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홍변호사를 수원에 있는 그의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연세에 비해 매우 정정한 것같습니다.
<>홍병호사=젊었을때 허리를 다친 일이 있어서 남들처럼 평소에 운동을
통해 체력을 다지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지요. 주위에서는 골프치라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수입도 적은데다 다른 사람의 신세지는 일도 싫고 해서
골프도 치지 못했습니다. 단지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보니큰 병에 걸리지
않고 나름대로 건강을 유지한것 같아요.
-수임건수는 많은 편입니까.
<>홍변호사=나이가 많아 현직 판사나 검사들과 친하게 어울리지 못한
탓인지 사건의뢰도 별로 많지 않아요.
-법조인이 됐던 것을 후회한 일은 없었는지요.
<>홍변호사=법률가로서 긍지를 느끼고 있으며 천직으로 여겼지요.
-법조계로 진출하게된 특별한 동기라도.
<>홍변호사=원산상업학교에 다닐때만 해도 역사과목에 커다란 흥미를
느꼈지요.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순수학문의 길로 들어서기가
두려웠어요. 일제때는 변호사들의 생활수준이 비교적 윤택했으므로
생활고만이라도 벗어나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변호사을 동경하게 됐지요.
상업학교시절 다쿠치라는 일본인 선생이 법전을 주면서 격려한 것도 큰
힘이 됐지요. 상업학교를 졸업한뒤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조합연합회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23세되던 해로 기억됩니다만
하루는 일본인 점술가라는 사람이 우연히 제관상을 보더니 당신은 장차
판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적이 있지요. 그로부터 8년뒤 대학을 마치고
사법관시보시험에 합격할때까지 일본인 점술가의 말이 때때로 내게 용기를
준것도 사실입니다.
-법조계에 몸담은 이래 가장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한 일은.
<>홍변호사=세칭 경향신문 폐간사건때 재판장을 맡았던 일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이 사건이후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더욱 금과옥조로 여기게 됐지요. 판사들이 외부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소신대로 재판할 수 있다면 사법권의 독립은 보장되는
것입니다. 경향사건에서 정부패소판결을 내리기 직전에 일본의
"오츠"사건을 회고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츠사건은 러.일전쟁전에
제정러시아의 니콜라이황태자가 일본을 방문중 오츠라는 지역에서
일본청년에게 피습,자상을 당한 사건입니다. 당시 일본정부는 러시아의
항의에 굴복,법원에 대해 피고인을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지요. 하지만 일본법원은 끝내 버티면서 무기징역을
확정지었습니다. 이사건을 계기로 일본사법부는 독립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자유당정권의 성격상 경향신문사건당시 마음고생이 많았겠습니다.
<>홍변호사=경향사건이 접수돼 심리가 끝나고 결정문이 송달될때까지 당시
직속상관이던 서울고등법원장은 하루에도 몇차례씩 저를 불러 정부측
승소를 종용했지요. 일부 대법관도 저를 찾아와 정부승소를 당부했습니다.
대법원장도 간접적으로 압력을 가했고요. 사실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지요. 정부패소판결뒤에 자유당정권은 공권력을 앞세워 저를
괴롭혔지요.
저와 가족을 미행하고 친인척들이 경영하는 사업체에까지 찾아가
거래장부를 압류하기도 했습니다. 자유당간부들의 모임에서는 저를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경향사건으로 심신은 극도로 피곤했었지만 이사건을 통해 "법은
특정개인이나 집단을 위해 제정되어서도 적용되어서도 안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지금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로 화제가 되고 있지요. 법관이나 변호사들의
재산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변호사들까지 재산을 공개해야 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시각들이 있을수
있겠지요. 법관의 재산공개문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법관들이 재산을 공개한뒤에 만에 하나라도 법관들의 권위가 무너지게 되면
사법부에 대한 불신풍조만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국민들이 법관을
우습게 알게돼 재판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란 상상만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
-변호사들의 수임료가 지나치게 높은반면 법률서비스수준은 별로 개선된게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소송의뢰인들과 변호사간에 수임료과다 여부를 둘러싼 소송사례가
최근들어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양측이 반목하게된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사회 개혁이
이루어 지고 법조계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면 자연히 해소될 문제라고
봅니다. "
-미국의 경우 워터게이트사건때 구속된 사람의 절반이상이 변호사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이사건이후 미국에서는 변화사윤리강령이
법과대학에서 필수과목으로 선정됐지요. 우리나라도 지금 일부 변호사들의
비리가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는 실정입니다.
"변호사의 직업윤리상 돈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마람직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소송수임료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제시대에 저명한 상법학자였던 마쓰모도 조지라는 변화사를
소개할까 합니다. 마쓰모도 조지는 동경제대 상대교수를 지냈고 통산상도
역임했던 분이지요. 1942년의 어느날 동경에 있던 마쓰모도 조지에게
소송의뢰인이 찾아왔지요. 이 의뢰인은 마쓰모도에게 자신의 변론을 위해
오사카로 내려가자고 요청했습니다. 물론 소송수임료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지요. 마쓰모도 조지는 수임료때문에 일하는게 아니라
소송의뢰인의 권익보호를 위해 일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는 분이었어요.
마쓰모도가 오사카에서 변론을 마치고공식적으로는 수임료를 한푼도
받지않은채 동경으로 돌아와보니 자기 주머니속에 현금2천원이 들어있어
깜짝 놀랐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당시 일본대학생들의 한달 하숙비가
70원정도였으니 2천원은 실로 어마어마한 돈이었지요. 우리가 부러운 점은
마쓰모도와 의뢰인사이에 비용문제가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변호사에 대한 신뢰가 높다는 얘기지요"
-우리국민들의 권리의식이 날로 높아지면서 소송건수도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의 숫자가 미국등에 비해 현저히 작기때문에
국민들에게 만족할만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지요.
"단순히 변호사의 수가 늘어난다고해서 법률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호사가 양산되면 비리변호사의 숫자도 늘어나고
전체적으로 변호사의 질도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현재 연간 3백명정도의
사법시험합격자가 배출되고 있는데 이숫자도 많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직 법관 또는 검사가 최초로 수입한 사건이나 일정기간 수임한 사건에
대해서는 현직 판.검사들이 관용을 베푸는 이른바 전관예우의 관행이
법조계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61년2월에 서울고법 부장판사직을 사임하고 변호사업무를
시작했지요. 당시만해도 전관예우의 혜택을 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관행이 생겨났는지는 몰라도 하루속히 시정돼야할
부조리입니다"
-변호사들의 정계진출사례가 늘어나면서 정치지향적인 변호사에 대한
소문도 많이 나돌고 있습니다. 변호사의 이미지문제와 관련해볼때
변호사의 정계진출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변호사들은 일차적으로 국민의 권익보호에 충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회에 변호사들이 다수 진출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변호사들의 전문지식이 요긴하게 쓰일테니까요"
-우리나라 변호사업계도 미국처럼 주식회사형태로 변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본는데요.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민사 형사뿐만 아니라 의료 산업재해
환경문제등 각분야별로 전문변호사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요. 현재
우리정부에서도 변호사회사이 설립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생각해온 이상적인 법조인의 자세는.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모습대로 만들었다는
귀절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이 깃들여있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그만큼 인간은 존중돼야 합니다. 바람직한 법조인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지녀야되지요.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행위를 재단할수 있겠습니까"
-후배 법조인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제시대에는 "천황"의 이름으로 재판했기때문에 재판결과도 천황에게만
책임지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을 위해
재판을 하고 변론을 합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강력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는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대로 재판해야겠지만 일반소송당사자에
대해서는 업의 한도안에서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아량을
가져야하겠습니다" <대담=김홍기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