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6.25동란후 처음으로 OB맥주가 시판되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팔려나가던 소위 셀러스마켓이었기 때문에 품질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을 법해도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6.25직후부터 유엔군 PX를 통해 일반시장에 유입되는 맥주는 꽤 많은
양이었고 또 그것이 세계굴지의 일류 맥주들이었기 대문에 우리에게는 큰
위협이 아닐수 없었다.

맥주는 한국맥주공업의 초창기부터 국제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품이었다.
더구나 유엔군용으로 들어오는 맥주는 면세품인데 우리는 막대한 주세가
가산되어있기 때문에 가격면에서도 큰 핸디캡이 있었다. 8.15해방이후에는
외국과의 교역통신이 자유롭지 못하여 문헌을 통한 외국양조기술의
변모추이도 짐작할수 없는 암흑시대였다.

품질을 일조일석에 고급화한다는 것은 무리이지만 세계수준의 맥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우리에게는 시대적인 여유가 없었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기술진을 외국에 유학시켜 기술을 습득케 하는것이
정석이기는 하지만 그러려면 최소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이
공백기간을 메우고 그동안에도 국내맥주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기술자를 초빙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6.25이후 외화사정은 악화되어 있었고 앞으로 국제수지가 개선될
전망도 밝지않았던 터에 외국기술자를 고용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다.
다행히 53년6월부터 인조빙을 제조해서 유엔군에 군납한 실적이 있어서
이를 외화획득의 근거로 월1천달러를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서독의 양조기사
루돌프 쇼테씨를 고용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정부승인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한국기업이 단순고용으로 외국기술자를 초빙한 첫 케이스가 되었다.

그는 55년 2월28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일에 착수한 전형적인
독일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조국의 패전을 겪었고 패전하의 맥주업계
양상을 목격하였던 만큼 한국전쟁으로 우리가 입었던 피해에 대해서
동지처럼 동정적이어서 어렵고 부족한 점은 잘 지적하면서도 잘
참아주었다.

그가 품질향상을 위해 지적한 것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현장 종업원들의
작업태도와 품질개선에의 의욕,둘째는 좋은 원재료만이 품질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부임하는 날부터 공장의 대청소를 시작했으며 본인이 호스를 들고
직접청소작업을 지휘하였다. 그때 회사의 이사로 있던 한국측기술자를
위시한 모든 기술진이 동참한 가운데 청소를 끝냈고 청소작업은 종업원의
습관으로 몸에배어들 때까지 매일 계속되었다. 또 그는 이것이
맥주품질향상의 제일보라는 것을 종업원에게 간곡히 일러 주었다. 그결과
종업원들의 태도,품질에 대한 관심도 괄목할만큼 달라지고 현장도 전과는
판이하게 깨끗해졌다.

맥주양조의 주원료인 맥아(엿기름)와 홀포(호프)는 세계각국에 수많은
종류가 있긴 했으나 우리기술자들은 일본제밖에는 사용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이 서독기사는 각국의 것을 비교한 분석표를 갖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이들을 어떻게 혼합하면 어떤 맛의 맥주를 만들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종업원의 작업자세가 중요하다든지 쓰여진 원재료나 반제품이 최종제품의
품질을 좌우한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쓰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느냐,그 목적을
달성할수 있게 하기위해서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문제를 모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더 큰 문제일수 있다.

품질의 고급화만이 우리나라 경제를 살릴수 있는 길이라고 사방에서
강조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품질고급화라는 대명제를 원료 자재
현장기술 현장기능공의 자세 고객의 의견등 여러가지 단순 소명제로 분리
분석해서 해결책을 강구하면 막연하게 품질고급화를 어떻게 할것인가를
고심하던때보다 문제해결에 더 가까워질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
문제해결의 방안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제조현장에서,판매현장에서,구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품질의 고급화든,생산성의 향상이든 이러한 문제는 전사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품질이나 생산성은 현장기술자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영자는 이제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경영진이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현장종업원도 없을 것이다. 전사원이 소매를
걷어 붙이고 나설때 불가능한 일은 없는 법이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얘기 할수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