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수상] 문화마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미국의 제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는 1848년11월에 당선되어
1849년3월에 취임했다. 그런데 처음에 예정된 취임식 날이 일요일이어서
그는 쉬는 날에는 취임할수 없다고 고집하여 데이비드 애치슨 상원의장이
하룻동안 임시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1일 임시대통령" 애치슨은 가까운 친구 몇사람으로부터 "1일 장관"을
시켜달라는 진지한 인사청탁이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은 몇년전
벨기에왕의 예를 연상시킨다. 낙태에 관한 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자 자기는
이 법에 서명할수 없다고 고집한 나머지 하룻동안만 왕위에서 물러났고
하룻동안의 후계자가 그 법안에 서명하여 마침내 그 낙태법은 무사히
발효됐다.
이런 사례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을 엿볼수 있는 간단한 예라고 하겠다.
물론 서양인들을 모두 같은 집단으로 묶을 수는 없다. 그들 역시 동양
혹은 아시아인들 못지않게 복잡하고 다양하기때문이다. 예를 들면
1789년의 프랑스 혁명때 표어는 "자유 박애 평등"이었다. 이
"자유"(liberte)라는 표현은 프랑스인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었을지 모르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개념적인 표현보다는 "freedom"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역마찬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의 무역마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무역마찰은 실은 문화마찬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문화마찰 그 자체가 아니면 적어도 무역마찰의 근원은 문화마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문화마찰은 물론 문화적 상호이해의 결여에 기인한다. 그리고
상호이해부족은 상호간 의사소통의 문제로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에는
언어문제가 그 저류에 깊이 박혀있다. 먼저 이 언어문제를 생각해보자.
미국의 닉슨대통령은 일본의 사토수상에게 일본의 방위예산 증액을
부탁한적이 있었다. 이때 사토 수상은 "젠쇼 시마스(선처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의 통역은 "I"ll do my best"였다.
"선처하겠다"는 말은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약속의 뜻은 거의 없다. 그러나
닉슨은 순진하게도 이 말을 믿고 있다가 실망한 것이다.
1988년의 미국 의회에서 종합무역법안이 성립되었을때 "adversarial
trade"라는 용어가 들어 있어서 일본이 몹시 긴장한 일이 있었다. 즉
일본의 언론에서는 결국 미국이 일본을 "적성무역국"으로 몰아 세운다는
오역으로 인한 오해때문이었다. 그후에 일본 외무성은 이 말을
"무역저해국"이라는 약한 표현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두가지 표현은 그
어느것도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마침내 일본의 전문가들은 이
용어의 원산지(1986년 월스트리트 저널에 발표된 피터 드러커논문)를
추적하여 그 뜻을 파악할수 있었다고 전한다.
언어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문화적 이질성,즉 사고방식의
차이이다. 미.일간의 문화적 차이는 한미간의 경우하고 흡사하다. 따라서
미.일간의 문화적문화제 우리나라와 미국과의경우에도 맞는다. 대체로
동양인들은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즉 의사표시를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양인들과의 교섭에 있어서 상대방의 감을 잡는 방법으로 눈치를
이용한다. 대조적으로 서양인들은 자기의 입장을 털어놓고 합의점을
찾으려 한다. 전자는 교섭(negotiate)을 하고 후자는 바겐(bargain)을
한다. 전자는 말이 적고 후자는 말이 많은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외에 한.미 일.미간에는 각기 양쪽 국내제도의
상이에서 나타나는 차이점들이 있다. 일본의 대미교섭실무자들이 언제
겪는 문제중에는 미국의 대일교섭상대자들은 항상 의회를 의식하고 있는
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행정부는 대외교섭에 있어서 국회를
거의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이 점은 우리의 경우에도 맞는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적 상이점 역시 근본적으로는 문화적 상이점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강대국들 틈에서 살고 있어서 큰 나라 앞에서는 말도
함부로 안하는 버릇이 굳어 있다. 특히 분단국이라는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버릇을 더욱 굳혀버려서 결국 우리는 강대국과의 대외교섭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자진해서 종속관계를 내세운다. 그러나 미리 눈치와
감을 잡고 알아서 기는 것만이 소국생존의 지혜는 아니다. 할 말은 일단
하고보는 굳건한 태도가 아쉽다. 우리도 할 말쯤은 일단 해놓고 세부득이
후퇴한들 손해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1849년3월에 취임했다. 그런데 처음에 예정된 취임식 날이 일요일이어서
그는 쉬는 날에는 취임할수 없다고 고집하여 데이비드 애치슨 상원의장이
하룻동안 임시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1일 임시대통령" 애치슨은 가까운 친구 몇사람으로부터 "1일 장관"을
시켜달라는 진지한 인사청탁이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은 몇년전
벨기에왕의 예를 연상시킨다. 낙태에 관한 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자 자기는
이 법에 서명할수 없다고 고집한 나머지 하룻동안만 왕위에서 물러났고
하룻동안의 후계자가 그 법안에 서명하여 마침내 그 낙태법은 무사히
발효됐다.
이런 사례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을 엿볼수 있는 간단한 예라고 하겠다.
물론 서양인들을 모두 같은 집단으로 묶을 수는 없다. 그들 역시 동양
혹은 아시아인들 못지않게 복잡하고 다양하기때문이다. 예를 들면
1789년의 프랑스 혁명때 표어는 "자유 박애 평등"이었다. 이
"자유"(liberte)라는 표현은 프랑스인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었을지 모르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개념적인 표현보다는 "freedom"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역마찬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의 무역마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무역마찰은 실은 문화마찬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문화마찰 그 자체가 아니면 적어도 무역마찰의 근원은 문화마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문화마찰은 물론 문화적 상호이해의 결여에 기인한다. 그리고
상호이해부족은 상호간 의사소통의 문제로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에는
언어문제가 그 저류에 깊이 박혀있다. 먼저 이 언어문제를 생각해보자.
미국의 닉슨대통령은 일본의 사토수상에게 일본의 방위예산 증액을
부탁한적이 있었다. 이때 사토 수상은 "젠쇼 시마스(선처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의 통역은 "I"ll do my best"였다.
"선처하겠다"는 말은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약속의 뜻은 거의 없다. 그러나
닉슨은 순진하게도 이 말을 믿고 있다가 실망한 것이다.
1988년의 미국 의회에서 종합무역법안이 성립되었을때 "adversarial
trade"라는 용어가 들어 있어서 일본이 몹시 긴장한 일이 있었다. 즉
일본의 언론에서는 결국 미국이 일본을 "적성무역국"으로 몰아 세운다는
오역으로 인한 오해때문이었다. 그후에 일본 외무성은 이 말을
"무역저해국"이라는 약한 표현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두가지 표현은 그
어느것도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마침내 일본의 전문가들은 이
용어의 원산지(1986년 월스트리트 저널에 발표된 피터 드러커논문)를
추적하여 그 뜻을 파악할수 있었다고 전한다.
언어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문화적 이질성,즉 사고방식의
차이이다. 미.일간의 문화적 차이는 한미간의 경우하고 흡사하다. 따라서
미.일간의 문화적문화제 우리나라와 미국과의경우에도 맞는다. 대체로
동양인들은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즉 의사표시를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양인들과의 교섭에 있어서 상대방의 감을 잡는 방법으로 눈치를
이용한다. 대조적으로 서양인들은 자기의 입장을 털어놓고 합의점을
찾으려 한다. 전자는 교섭(negotiate)을 하고 후자는 바겐(bargain)을
한다. 전자는 말이 적고 후자는 말이 많은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외에 한.미 일.미간에는 각기 양쪽 국내제도의
상이에서 나타나는 차이점들이 있다. 일본의 대미교섭실무자들이 언제
겪는 문제중에는 미국의 대일교섭상대자들은 항상 의회를 의식하고 있는
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행정부는 대외교섭에 있어서 국회를
거의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이 점은 우리의 경우에도 맞는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적 상이점 역시 근본적으로는 문화적 상이점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강대국들 틈에서 살고 있어서 큰 나라 앞에서는 말도
함부로 안하는 버릇이 굳어 있다. 특히 분단국이라는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버릇을 더욱 굳혀버려서 결국 우리는 강대국과의 대외교섭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자진해서 종속관계를 내세운다. 그러나 미리 눈치와
감을 잡고 알아서 기는 것만이 소국생존의 지혜는 아니다. 할 말은 일단
하고보는 굳건한 태도가 아쉽다. 우리도 할 말쯤은 일단 해놓고 세부득이
후퇴한들 손해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