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우리경제에 거는 국민적 기대는 김영삼차기대통령이
내세운 이른바 "신경제"구상에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신경제구상이란 그동안 정부가 경제활동을 광범위하게 규제해온
경제행정의 틀을 개혁해 민주주의체제에 걸맞게 민간의 참여와 창의를
이끌어낸다는 것으로 이해되고있다. 그 경제개혁의 핵심과제중 하나로
현행 금융제도가 도마위에 올려져있다.

얼마남지않은 6공정부 역시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금융제도개편을
서두르고 있는 인상이다.

일부 금융전문가들은 금융제도개편계획이 정권말기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있다.

이들은 88년이후 추진된 금융산업개편에서 드러났듯이 금융산업의
소프트웨어는 발전시키지 못한채 개편을 핑계로 금융기관의 신설 합병
전환등 하드웨어만 바꿔 이권만 남발해온 경험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개편작업이 금융자율화등 진정한 변화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채
껍데기만 건드리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정부가 추진중인 금융제도개편작업에는 그동안 말썽도 많았던
정책금융의 축소 내지는 폐지가 핵심사항중 하나로 들어가 있다.

대다수의 민간금융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각종 특혜성 정책금융을
폐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왔고 근자에는 이용만재무부장관도
금리자유화에 걸림돌이 되고있는 정책금융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정책금융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과 중소기업인들의 잇따른 자살을
계기로 새삼스럽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같다.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특정분야의 업체에 지원해주는 각종 정책금융은
현재 은행총대출금의 3분의1(32조원)에 이르고 있다. 이는 정부재정에서
나간 정책자금 5조2,000억원의 6배에 이르는 규모이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정책자금은 한은의 통화운용을 제약함은 물론
은행자금운용의 자율성을 떨어뜨리는 큰 요인이 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역전쟁의 파고가 어느때보다 높아가고 있는 마당에 정책금융을
단번에 없앤다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정책금융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경제현실에서 볼때 어느정도
불가피한것이고 우리의 경우 정책금융자체보다는 정책자금의 대기업편중이
문제가 되고 있으므로 이를 시정하는 선에서 타협점이 찾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책금융논쟁을 보면서 한가지 짚고넘어가야 할 것은 정책금융의 폐지가
곧 금융자율화의 선결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자율화의 전범국이라고 할수 있는 미국에서조차 요즘들어 정책금융을
도입 하려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차기대통령의 경제문제싱크탱크역할을 맡게될 미국경제자문위원회의
새의장으로 선임된 로라 타이슨교수는 미국이 특혜금융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금융전문가들이 미국식 금융제도의 도입을 외치고있는 바로
이때에 미국은 한국식 금융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한국의 산업화를 다룬 저서로 유명한 미국의 앨리스 앰즈덴교수는 이렇게
충고한다.

"한국이 금융제도를 자유시장체제로 개혁한다고 하여 지식집약적 산업과
하이테크산업에 대한 현행 특혜금융제도를 폐지할 필요는 없다.

건실한 기업이라면 규모를 따지지 않고 돈을 빌려줘온 외국은행들까지도
한국에서 영업하면서부터는 무조건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있다. 이것만
봐도 자유시장체제만으로는 건실한 중소기업에 적절한 금융지원이 따르게
하지 못함을 알수 있다. 자유시장체제가 항상 최선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은
독선일 뿐이다"
그의 눈에는 급속한 산업발전에 기여했던 한국금융산업의 긍정적 특성을
철저히 연구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구미의 극단적 자유시장체제를 그대로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한심스럽게 비쳐지고 있는것 같다.

정부의 금융제도개혁작업을 보면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위험한
것처럼 무조건 바꾸고 보는 것 역시 위험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