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를 왕복하는 대규모 상선에 호상 D가 그의 소유인 양200여마리와
함께 승선했다. 부를 앞세운 D의 거드름이 유난히 돋보였다. 거느린 양의
수로 부의 힘을 가늠하던 시대였기에 "양200두"는 그의 거드름을 보증
하고도 남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선실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빈상의 P를 보고 부상은 느닷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지나가는 길을 방해했다.

모욕을 당한 P는 영문도 모른채 그저 용서만을 빌어야만 했다. P는 비굴
해진 표정으로 부자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양한마리만 팔아달라"고 애걸
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제시하며 양한마리를 지적했다. 부자는 물
정모르는 "촌것"으로 부터 횡재하는 기분으로 그가 지적하는 양을 팔아주
었다.

턱없이 많은 돈을 지불하고 P가 사들인 양은 이 양떼들중에서 머리격이
었다. 그런데 P는 갑자기 그가 지금막 산 양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요
란하게 울어대는 양을 바닷속에 내던져버렸다.

바닷속에 던져진 양이 비참한 울음소리를 내며 물속에서 허우적 거리자
다른 양떼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더니 하나 하나씩 물속으로뛰어들
어갔다.양은 그들의 리더급양에게 무조건 추종한다는 사실을 P는 알고있
었다.

200여마리의 양이 바다속으로 줄을 지어 뛰어들어갔다. 마지막 한마리
만이 남았다. 부자는 마지막 양의 꼬리를 붙잡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P의 이지러진 자존심은 이렇게 해서 보상되었다.

이"양떼의 죽음"이야기는 르네상스기의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
(1494~1553)가 남긴 한 작품속에 등장한다.

바로 엊그제 마감한 전국 전기대학의 입시원서 접수 모습을 보면서 이
양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갔다. 금년에도 예외없이 "눈치 지망"의 이
변들이 도처에서 속출했다. 변덕스런 입시정책 때문에 우리의 귀한 2세
들이 자존심을 짓밟히고 있다. 알량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책입
안자들의 졸책때문에 정작 몰려야할곳은 한산하거나 모자라고(예를 들면
기초과학분야) 무엇하는 곳인지 잘 알수도 없는 분야에는 인산인해를 이
루었다. 우리 청소년들(그리고 그 어버이들)을 "양떼의 죽음"으로 구제
해야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