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CD위조단의 주범으로 추정되고있는 황의삼씨(54)는 하루 수백억원의
자금을 동원할수있는 "큰손"으로 강남일대사채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

황씨는 지난 89년 서울강남 신사동에 정모씨(52)와 함께 "한미실업"이란
돈놀이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채업에 뛰어들었다.

황씨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확실한 담보설정을 한뒤
대출금을 내주면서 대출금의 2.5~3%를 선이자형식으로 공제하는 방법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것으로 알려졌다.

황씨 잠적이후 한미실업 사무실에서 발견된 고객들의 대출신청서등을 보면
대부분 억대단위였으며 월2.5~3%의 선이자와 함께 사례비조로 대출금의
5~10%를 미리 공제한다는 약관이 명시돼있어 거래내용을 짐작케했다.

이웃한 사무실직원들은 "황씨는 "회장"으로 통했고 그밑에 사장으로
불리는 사채업자 10여명이 직원으로 일했으며 한미실업사무실은 강남일대
사채업자들의 "아지트"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재력에 걸맞지않게 서울 송파동 관동연립주택지하 24평짜리 전세집에서
생활해온 황씨는 신변노출을 꺼린듯 이웃들과도 거의 교분없이 지낸것으로
확인됐다.

황씨는 지난 10월초 부인과 두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도피했다.

김기덕씨
20일밤 서울지검에 자진출두한 김기덕씨(43)는 명동 여의도등
사채시장바닥에서 "마이다스의 손""큰손중의 큰손"으로 통하는 인물.

김씨는 한달에 자그마치 1천억~1천5백억원규모의 CD거래를 해치우는
CD유통시장의 독보적인 실력가로 지난달엔 무려 2천억원대의 CD를
대신증권에 중개,주변을 놀라게하며 이부문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희도전지점장 자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결정적 열쇠를 쥐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는 김씨는 사채업자이면서도 사채놀이보다는 CD에만
전력투구,역시 CD전문가인 이전지점장과 자연스럽게 맺어졌다.

김씨는 이씨가 자살직전인 14일 낮에도 명동로얄호텔2층 일식집에서
이씨와 신원미상의 40대남자와 함께 식사하며 이씨로부터 1백억원어치의
CD를 건네받았다.

또 이씨는 이날 1백억원어치의 CD를 갖고나가며 김씨에게 확인조회를
지시했으나 이를 40분만에 번복해 김씨가 이씨 자살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다는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하고있다.

김씨는 대학졸업후 무역회사에 근무하다 84년까지 제과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지난 90년에는 CD중개때의 커미션으로 "기민건설"을 창립,2년동안
52가구의 연립주택을 부천등지에 짓기도 했다.

이광수씨
1백70억원 상당의 가짜 양도성예금증서(CD)를 유통시킨 사채업자
이광수씨(41).

검찰 조사결과 이씨는 6월중순께 가짜 CD를 한일투자금융에 매도,거액을
챙겨 부인 김광숙씨(37)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혼자 16일 귀국했으며
이희도 전상업은행명동지점장 자살사건이 터지자 19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씨는 10억원짜리 가짜 CD 17장을 자신과 부인 처제 동서등의 명의로
각각 나누어 시중에 유통시켰다. 이 CD를 매입한 한일투자금융측은
"발행처인 동남은행과 광주은행에 전화문의한 결과 증서번호와 만기일등이
일치해 돈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CD위조에 손을 대기전인 90년3월 이씨는 "세계무역"이라는 유령회사를
차리고 중국산 화병 정수기등을 수입 판매하는등 무역업자 행세를 했다.

이씨는 그러나 무역보다는 주로 기업에 토지매입을 알선하고 중개료를
챙겼으며 나드리유통이 땅을 담보로 광주은행에서 토지매입자금을 대출받을
때도 깊이 간여한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청년회의소(JC)인천지부장및 국제교류위원등의 청년단체관련
직함을 사용했으나 활동은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