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회복·정화·성장을 스스로 돕는 여정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웰니스 #경기도 여주 편절대권력을 손에 쥔 정치인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가 ‘사람’이라면, 그 사회는 굳이 어렵게 상상하지 않아도 어제보다 윤택한 오늘, 내일이 기대되는 곳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조선 제4대 왕 세종(1397~1450)이 조선을 다스렸을 때를 영릉 입구에 자리한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먼저 살펴본다.사랑과 통치의 철학 '세종대왕릉'세종대왕은 장애를 지닌 신하를 중용하고, 예로써 대했다. 억울한 죄를 쓴 이의 말을 경청해 누명을 벗게 했고, 나라의 밝은 도를 하나하나 세웠다. 백성들도 문자의 뜻을 쉽게 알고,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들었다.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은 그 뜻처럼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로 농서·의서 등을 한글로 편찬해 배움의 문턱을 낮췄다.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물시계 자격루를 발명해 노동과 휴식의 기준을 공정하게 열었다. 오늘날에도 과학과 예술, 제도에 대한 개념과 인간에 대한 배려가 넉넉한 지도자를 염원하며,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왕이 잠든 영릉으로 향한다.금천교를 지나 홍살문 너머로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봉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과 풍수, 유교적 세계관, 장례 의례가 조화를 이룬 왕릉 문화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영릉은 속세에서 성역으로 나아가는 사유를 담아 진입·제향·성역 공간의 세 단계로 구성됐다.특히, 한 봉분에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모신 조선 왕가 유일의 합장릉으로 인간적 유대와 공적 질서를 함께 품었던 세종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성과평가 상위 2.9%인 에이스급 직원이 회사가 진행 중인 '특별퇴직'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하자 1억4000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저성과자'를 우선 퇴직시키고 '우수 인재'를 붙잡아두는 희망퇴직 심사 기준은 경영상의 정당한 재량권 행사라고 판단했다. ○거액 위로금 받고 싶은 우수사원 vs 안 된다는 회사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단독(김나나 판사)은 최근 근로자 A씨가 B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금전 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리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만 55세가 되는 2025년 1월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게 될 예정이었다. 평소 퇴직 후 배우자와 장기 여행을 꿈꾸던 A씨는 상사에게 수차례 "임금피크제가 시작되면 더 이상 근무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혀왔다.마침 회사가 2024년 12월 고령화와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노조와 합의를 거쳐 △성과평가 하위 △장기 승진누락 △업무 부적응자를 기준으로 '특별희망퇴직' 실시를 공지했다. 4억원이 넘는 파격적인 위로금이 걸린 특별희망퇴직에 A씨를 포함한 219명이 몰렸다. A씨가 특별퇴직을 신청하자 상급자인 사업부장은 특별퇴직을 축하해주면서 송별회를 열고 퇴직 기념패까지 수여했다하지만 회사는 이중 A씨를 포함한 19명에 대해 날벼락 같은 '미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유는 A씨의 '우수한 업무 능력'이었다. A씨는 일반직 중 상위 2.9%의 '성과평가 최상위권자'였기 때문에 회사의 심사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결국 A씨는 이듬해 1월 일반 희망퇴직 신청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A씨는 퇴직금과 별도 2억 90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에 큰 자부심과 동시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체성이 제 앞길을 비춰주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안중근 의사의 사촌인 독립운동가 안명근 선생의 증손녀 안성심 육군3사관학교 생도(21)는 1일 인터뷰에서 “독립운동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이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려는 결단이었다고 여긴다”고 덧붙였다. 안 생도는 지난달 20일 육군 초급장교 양성기관인 육군3사관학교 63기로 입학했다.안 생도는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데에는 증조부인 안명근 선생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 자연스럽게 증조부의 삶을 접하며 성장하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며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역사관과 안보관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안 생도의 가정에서 선대에 대한 교육은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뤄졌다. 그는 “부모님은 증조부가 고문과 회유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