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신용금고는 지난 72년의 8.3조치와 관련이 깊다. 정부는 당시 이
혁명적인 금융조치를 통해 기업사채를 전면동결하고 신고된 사채를
장기저리로 바꾸거나 출자전환하도록 명령했는데 이런 조치를 예상해서
만든 상호신용금고법을 하루전인 8월2일자로 발효시키고 열흘이 채안되는
11일 시행령을 공포함으로써 설립의 길이 트였다.

서민과 영세상공인의 금융편의도모와 저축증대를 내세웠지만 요는 사채와
당시 우리네 생활주변에서 널리 유행하던 계를 제도권으로
유인,양성화하려는게 목적이었다. 어쨌든 은행문턱을 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온 수많은 서민대중과 시장상인 중소 혹은 영세기업인들에게
시장과 동네골목에 자리한 신용금고는 편리하고 친근한 상대가 될수
있었다. 따라서 그간 많은 부침과 곡절을 겪으면서도 성장을 거듭해와
현재 전국적으로 도합 237개가 영업중이고 운용자산(예금)이 자그마치
15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 신용금고업계에 지금 큰 사고가 터졌다. 처음이 아니다. 지난
87년에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것은 이번과 성격이 달랐다. 금고 돈을
횡령 혹은 유용한 형사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번 것은 규정을 어기고 사주
혹은 몇몇 대주주와 증권가 큰손이 엄청난 돈을 불법대출해갔고 금고가
그것을 되돌려 받을수 없게된 대형금융부정사건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금액만도 2,100억원에 달하고 관련된 금고가 경기지방의 2개외에도
서울에도 20여개나 된다는데 털어보면 필경 더 늘어날 것이다.

사건의 배경에 관해서도 많은 얘기가 있다. 우선 부동산경기와
증시침체를 든다. "거품"진정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미국과 일본에도 많다. 갚을 수 없게 되니까 문제가 터진 것이다. 다음은
당국의 감독소홀을 든다. 재무부와 은행감독원이 좀더 관심을 갖고
챙겨왔던들 일이 이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긴데 이 대목도
일리가 없진 않다.

그러나 근본원인은 우리의 전근대적인 금융관행과 금융경영풍토에 있다고
해야 옳다. 은행을 정부금고시해온 오랜 관치금융의 폐단이 신용금고를
사금고시하고 몇몇 사람의 개인금고로 운영하는 탈법을 저지르게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동시에 그런 가운데서 책임경영의식이 자라지
못했다. 당국은 먼저 진상을 철저하게,그러나 가급적 신속하게 가려
수습책을 제시함으로써 예금자의 불안진정과 피해극소화를 도모한 다음
재발방지책을 강구하는게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