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자원이 없는 한국이 어떻게 수출시대를 개척했나. 초기엔
우리들의 어머니 누이 딸들의 머리털이 자원이었다. 우리 신체의 일부인
머리털을 잘라 그것을 가공하여 판것이 가발수출 1위국이었다.
가진것이라곤 없는 나라에서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몸부림이었다. 오
헨리의 소설에서 가난한 여인이 남편에게 크리스마스선물을 하기위해
자기의 치렁치렁한 머리털을 잘라 시계줄을 사고 남편은 부인의 아름다운
머리를 위해 시계를 팔아 빗을 산것과 같은 애절할 얘기다.

이 소설속 부부의 간절한 사랑 같은 것이 우리의 수출에 대한 열정이었다.
미싱을 돌리는 여공에게도,풍랑을 헤치며 상품을 실어나르는
선원에게도,기업인 관리할것 없이 모든 국민에게도 수출의 보람이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거기에 한국경제의 좌표가 있었다. 제조업이 쭉쭉
뻗어났다. 오늘날엔 자동차 선박 반도체도 수출한다. 30년간 1인당 GNP는
80배가 늘어났다. 확고한 좌표가 우리를 인도했다.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수출총액이 중국에 뒤떨어지더니 국가경쟁력이
말레이시아에도 추월당했다는 소식이다. 제조업은
해외시장에서도,국내시장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여러 분야중 제조업이
가장 고통을 받고 있다. 경제의 기둥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선단이 망망대해에서 엔진이 꺼져 롤링과 피칭을 격심하게 하고있는
꼴이다. 요즘 기업들이 북방투자를 서두르고 있어 진취적 기상이 높지만
사실은 구명정을 타려고 몰려드는 현상일수도 있다.

이같은 참담함은 한국경제의 좌표에 대한 집착이 알게 모르게
유야무야됐기 때문이다.
좀 잘살게 되었다고 땅속에 갑자기 지하자원이 늘어날 턱이 없다. 가발을
수출하던 때와 자원없기는 마찬가지다. 남의 곡식을 도정하여 삯을 받는
방앗간경제구조는 앞으로도 우리의 운명인 것이다. 이미 부자가 된 느낌에
방앗간 일을 허술히 하여 일감을 잃고있는 것이 현상황이다.

성공이 몰고오는 화에 대하여 적절히 경계하고 대응하지 못한 것이
탈이었다. 성공은 후속적 성공에 의해서만 지탱될수 있다. 하나의 성공에
도취하여 게을러지는 것이 화이다. 또다른 성공을 기도하기 보다는 기존의
성공을 전리품처럼 다투는 것도 화이다. 상품에 있어서 계속적 성공은
꾸준한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인데 두가지 화로 인해 기술향상은 커녕
불량품만 늘어난 것이 우리경제의 모습이다.

1백억 5백억달러 수출시대의 상품수준으로는 1천억달러 수출시대에
대응할수 없다. 요즘 중국 동남아국가등이 우리의 5백억달러수출시대의
상품으로 값만 비싼 한국상품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 그같은 예이다. 이는
우선 기업측면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기술개발로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할 때에 종래처럼 양적팽창에 열중한 면은 없는지 반성해야
할것이다. 해외투자도 국내에서의 기술적 우위확립 노력을 제쳐놓고 양적
팽창만을 노리는 것이라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무자원국이면 자원국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살아남을수 있다. 적당히
일을 때우면 된다는 의식이 문제다. 종전 같으면 "회사일 때문에"하면
모든 것이 통했다. 잔업도,철야근무도,해외출장도 모두 정당화됐다.
이말이 요즘은 신통력을 잃었다. "가정 때문에"하면 회사일도 모면할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가정의 행복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회사가 불실해지면 가정의 행복이 위협받고,국민경제가 침체되면
국민복지가 지탱될수 없다는 균형감각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 외면하면
개인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이며 공동체에 대한 이반일수 있다.

그러나 기업외적 요인이 크다. 기업들의 해외경쟁 여건이 상대국보다
불리한 점도 제조업과 수출의 기를 꺾는다. 전에는 내수시장이 보장되어
수출에서 적자를 봐도 앞을 내다보고 기를 쓰고 뛰었다. 지금은 시장이
개방되어 경쟁국과 동일한 조건이 아니면 제조업이 존립하기 힘들게
되었다. 경쟁국보다 배이상의 금리,생산성에 비한 고임금,더 많이
놀수있게 한 제도,높은 경제외적 비용,이런 제약속에선 기업들이
외국기업과 경쟁하기위해 기술투자와 설비투자에 나설 엄두를 내기 어렵다.

과거에 정부는 제조업에 대한 적극적 유인책과 함께 사업의 안전성을
보장했다. 이제 그것은 정경유착이나 특혜의 우려가 있어 불가능하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경쟁국과 동일한 여건만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여러가지 불리한 조건에 추가하여 기업의 눈가리개 같은 불확실성이 또
있다. 정치적 인기를 겨냥한 정부개입은 기업들이 전도를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각종 행정규제는 관료들의 자의성이 개재되어 기업들에겐 지뢰밭이
된다. 일관성없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를 한다면서 정부가
일반의 반시장감정에 편승하여 기업들은 죄인처럼 움츠리기도 한다.

정부의 실패는 시장의 실패보다 더 위험하다는 교훈을 아직도 못깨닫고
있다. 저급수준인 정치적 요구에 국제수준이어야할 경제를 의탁하는
경우도 있다.

국제적 시장체제에서 싸워야할 경제를 각종 시장제약 요인으로 옭아매고
있는 꼴이다. 이래서 기업인들은 기술동향이나 시장추세를 살피기보다
정치눈치보기에 더 급하다. 제조업강화대책은 말만 무성할뿐 실제로는
제조업이 약화되고 수출기반이 침하한다.

지금 세계경제는 재편과정에 있다. 북미 EC의 블록화등 우리에게는 더 큰
파고를 예고한다. 아시아에선 일본과 동남아간의 수직분업체제가 형성되어
한국은 소외되고 있다. 기술과 금융전쟁은 제조업의 사활을 좌우하게 되어
이방면에서 낙후된 우리에겐 발디딜 곳이 더 좁아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물안권력향방에 경제가 신탁되어 정치적좌표이동이 경제좌표를 UFO처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만하면 즐겨 살만하지 않겠느냐고 할수있겠지만
무자원국인 한국은 현상유지가 불가능하고 더 잘사는 길 아니면 더 못사는
길밖에 선택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뻔하고 그 길은 머리털을 잘라 수출하던 시대의
경제좌표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그때처럼 머리털을 자원화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지만 머리털을 수출상품화한 제조업과 수출에 대한 열정만은
계속 한국선단의 엔진이 되어야 한다. 30여년의 격세를 두고 우리는 다시
머리부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엔 머리털이 아니라 두뇌력의
자원화이다. 과학기술이다. 그 두뇌력도 제조업과 수출에 대한 가슴속의
열정이 없으면 우러나지 않는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관료 근로자 기업인
할것없이 모두 이를 확인해야 한다.